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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2020.08.02 전신거울
  3. 2020.08.02 저지르다
  4. 2020.08.02 혼자 숨는 저녁
  5. 2020.08.02 비빔국수
  6. 2020.08.02 태풍주의보
posted by 풀숨 2020. 8. 2. 09:09

푸르른 봄날



이재



눈보다 조금 높은 위치에서

불의 혀처럼 마을 핥는 태양 아래

민들레 꽃씨 봉오리 고요하다

아무도 내 이름 불러주지 않아

먼 산 마중나온 앞마당

참새는 떨어질듯 날아 가고

민들레 불어 산으로 보낸다

가다가 지치지 않게 바람이라도

불었으면 하는데 내 마음 같지 않고

덥덥스레 투명하다

움직이는 것은 움직여 가고

선 것은 선 대로 머물러 있는데

손으로 쌍안경 만들어 먼 산에 앉은

하루를 두리번거린다

호기심 깊은 고양이 눈동자 같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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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풀숨 2020. 8. 2. 09:07

전신거울



이재



무더운 밤바람은 방향이 없다.

새벽에 지는 달맞이꽃

시선을 팽팽하게 부풀리는 밤의

소문 좇으려 노을로 들어가는 갯벌처럼

아이돌 여가수의 금발 머리처럼 피었다.


신화는 핫팬츠를 입는다

고대로 갈수록.

신성한 상형문자 지키는

가난한 문지기, 신전 억새풀은

눈부신 적요를 이기지 못하고 마르는데

애절한 발라드는

형광 네온등 아래 아찔하다,

숨이 가쁠수록

샤넬 향수가 전두엽을 깨고 뇌수에 퍼질수록.

처음엔 낯설지만 이내 익숙해지는

신전 입구에 들어서자

뽀드득뽀드득 소리 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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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풀숨 2020. 8. 2. 09:06

저지르다



이재이



숨소리를 기억할 수 없는 꿈을 꾼다

제단 위에 놓인 창조의 책을 찾지 못하고

이리 뒤지고 저리 뒤적이다

언어를 잃어 기도하지 못하고

아무나 불러보는데

아무도 바라보지 않는 가시나무


아담아 네가 어디 있느냐

아담아 네가 무엇을 하였느냐

밖에서 들려오는 음성에

선듯 나서지 못하는 사이 내가 밉다


아비의 아비의 아비는

사과 하나에 팔렸고 거리에 주저앉았다

그의 자식들은 사과 하나 이상의 것에 팔리며

적어도 아비 보기에 창피하지는 않지만

사과 하나가 안 되는 것에

팔린 날도 있었다


그날, 나는 사랑을 모른다는 것을 알았다


무엇을 해도 될 것 같은 순간

스스로 머리 위에 숯불을 놓지 않으면

가시덤불로 들어가지 않으면

쓰레기도 안 되는 것에 팔린 채

사랑은 비명이 된다


수선화처럼

활짝 핀 얼굴 안에 부끄러운 얼굴 담고

들풀의 이름으로

아비의 아비의 아비에게

창조의 책을 건네기 위해

흙밭에서 움트고 싶다


죽음의 책만 비명으로 펄럭이는

황무지에서

맨몸으로 심겨야 씨앗이 된다는 것을

땅은 처음부터 알고

부르튼 입술, 신음으로

배수구 같은 갈증을 토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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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풀숨 2020. 8. 2. 09:04

혼자 숨는 저녁



이재



시를 연습해 보면 안다

얼마나 너를 멀리하는지 행여

가까이한다 해도 살을 비벼준 적이 있는지

얼마나 삶을 고민하는지 행여

고민한다 해도 밤새도록 울어 본 적이 있는지

너의 눈빛에 익숙해지는 것은

싱크대 밑에서 양은냄비를 꺼내

라면을 끓여 신 김치와 함께 상에 내는 것이다

너에게 시간계정을 열고

너의 얼굴에 꽃받침 하는 손이다

비 오는 날

혼자 숨는 저녁이 아니라

비 맞는 몸에 비누 거품을 내는 것이다

서로의 몸에 입술 자국을 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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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풀숨 2020. 8. 2. 09:02

비빔국수



이재이



기냥 국시나 비벼 묵자

외할머니는 가진 것 없는 살림을

손주 위해 맨손으로 빨갛게 물들였다

상 위에 국수 대접 두 개와

동치미 한 그릇

겐차녀?

공부나 허지 여그는 머 헐라고 왔능가

손주가 먹는 모습을

한참 바라보다가 한 젓갈 뜨고는

겐차녀?

동치미 그릇을 앞으로 밀어준다

국수 삶아 찬물에 헹구고

간장 조금에 고추장, 설탕, 미원

김치 국물 넣어 비비고

열무 썰어 올려놓는 게 전부인 한끼

친구들 만날 생각에

후딱 먹고는

할머니, 나 나갔다 올께, 하는

손주 뒷모습을 한참 바라보다가

조심혀, 혼잣말이 오물오물 국수에 얹혀진다

살과 살을 비비면 붉어진다는 걸 나중에

대문 뒤에 숨어서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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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풀숨 2020. 8. 2. 08:58

태풍주의보



이재이



바람이 시작되는 곳

두 눈 찡그리며 그곳이라 여겨지는

한 곳을

오랫동안 바라보았다


바람의 처음은 고요라

바람이 시작되고 0.1초 지난 곳에서

침묵을 바라며

손톱만큼 떨리고 싶었다


어린 양의 울음처럼

무릎 꿇고

깃발 하나 세워놓고 싶었다

비에 씻긴


나부끼지 않고 흔들리는

어둠 속 흐느낌의 노래


하얀 구름벽

문고리 틈으로 보이는 바람집에

커튼을 묶고

산촌 농부처럼

진흙밭 감자꽃 피우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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