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sted by 풀숨 2020. 8. 2. 09:12

장마



이재



처마 끝 툇마루에 쪼그려 앉아

장마 한 자락

어둠처럼 떨어지는 빗방울에

석상같은 손 내밀어 담으며


막배 끊긴 섬처럼

행여조차 바랄 수 없는

장승이 된다


숨 닫힌 대문 너머 가로등

불빛은 비에 안겨 눈물로 부서지고

저 멀리 개짖는 소리는 바람에 씻겨

울음으로 흐른다


남겨진 자는 종일 대문을 바라보고

떠난 자는 발자국을 바라보지 않는다


그래도 이 밤

닿을 수만 있다면

한 줌 남지 않고 흘러내려도

내민 손끝에 스치기라도 했으면


툇마루 삐걱이는 소리가

나를 깨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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