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 나라에 대한 소망
주께서 내 곁에 서서 나에게 힘을 주심은 나로 말미암아 선포된 말씀이 온전히 전파되어 모든 이방인이 듣게 하려 하심이니 내가 사자의 입에서 건짐을 받았느니라 주께서 나를 모든 악한 일에서 건져내시고 또 그의 천국에 들어가도록 구원하시리니 그에게 영광이 세세무궁토록 있을지어다 아멘 (딤후 4:17~18)
이제 겨울이 되었습니다. 며칠 전에는 이곳에도 눈이 많이 내리고 날씨가 추워져서 겨울을 실감하고 있지요. 눈이 내리고나서 비가 조금 온 후에 온도가 영하로 내려가니까 눈이 녹다가 얼었는데 집 앞에 있는 나무에는 눈꽃이 피었다가 투명한 얼음꽃으로 아름답게 변하는 것도 보았습니다. 삭막한 것 같은 겨울에도 아름다움은 여전히 빛이 납니다.
디모데후서는 모두 다 잘 알고 있다시피 사도 바울의 마지막 서신입니다. 이 서신을 마지막으로 바울은 로마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말미암아 순교하였습니다. 그의 생애 중 가장 마지막 날들에 그는 과연 어떤 신앙을 고백하고 있을까 살펴보고 우리 또한 사도 바울처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인해서 어떠한 어려움과 고난을 당하더라도 능히 이겨낼 수 있도록 우리는 담대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특히나 요즘처럼 코로나19 바이러스로 인해서 하루에도 수천 명이 인생을 마감하는 시기에는 더욱 그렇습니다.
오늘날 우리가 처한 주변 환경이나 상황들을 돌아보았을 때 우리는 별로 종교의 자유를 위한 소망이 필요하지 않는 시대를 살고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제3 세계의 나라들이나 중국, 북한 같은 곳에서 선교하시는 분들의 이야기는 많이 다르겠지만, 웬만한 국가들에서는 종교의 자유가 보장되어 있고 또 먹을 것과 입을 것이 넉넉한 환경에 있기에 비록 삶이 고단하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소망이라고까지 할 만한 핍박이나 환난을 겪으면서 신앙생활을 하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전체 인류가 코로나19로 인해서 전염병에 대한 두려움으로부터 벗어나고자 하는 현실적인 소망을 갖고 사는 시대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특별한 계획 아래서 전체 인류에게 임한 이 두려움은 사람들이 이전과는 다른 생각을 하도록 이끌고 있습니다. 그저 한결같이 그냥 지나갈 것만 같았던 삶이 이제는 여행도 할 수 없고 친구들과도 대면하여 만날 수 없는 고통을 겪어야 하는 삶으로 바뀌었습니다. 그래서 모든 사람에게 한가지 소망이 생겼습니다. 이 코로나가 하루라도 빨리 지구상에서 사라졌으면 하는 현실적인 소망을 매일매일 모두가 이야기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좀 더 크게 보아야 합니다. 우리가 평소에는 사랑을 강조하며 이렇게 많이들 말합니다. “믿음, 소망, 사랑, 그중에 제일은 사랑이라”라고요. 이 말씀은 고린도전서 13장에 기록된 말씀인데, 정확한 말씀은 “그런즉 믿음, 소망, 사랑, 이 세 가지는 항상 있을 것인데 그 중의 제일은 사랑이라”입니다. 믿음과 소망과 사랑은 항상 있을 것이라고 하나님께서 가르쳐 주셨습니다. 이 땅의 삶에서 어떠한 이유로든, 그리고 심지어 새 하늘과 새 땅에 가더라도 역시나 소망은 항상 있을 것입니다. 항상 있을 소망은 무엇일까요?
사도 바울 역시 자신의 삶이 소망으로 인하여 확고해질 수 있었다고 고백합니다. 딤후 4:18 말씀을 보면, “주께서 나를 모든 악한 일에서 건져내시고 또 그의 천국에 들어가도록 구원하시리니 그에게 영광이 세세무궁토록 있을지어다 아멘.” 이 말씀에서 천국은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천국 곧 성도가 죽은 다음에 가는 천국을 이야기 하는 것이 아닙니다. 물론 사도 바울은 죽어서 천국에 갔습니다만 이 구절에서 사도 바울이 말하는 천국은 그 천국이 아니라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를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성도가 죽으면 가게 되는 천국은 영어로 하면 ‘heaven’입니다. 하늘입니다. 영어로는 heaven 이란 단어가 단순히 하늘 sky 라는 뜻 보다 더 깊은 의미를 가지고 있어서 한글로 번역할 때에는 하늘 또는 천국으로 번역을 합니다. 그런데 이렇게 번역을 하다 보니 문제가 생겼습니다. ‘The heavenly kingdom’ 또는 ‘The kingdom of heaven 하늘의 왕국’ 역시 한자로는 ‘천국’으로 번역되기 때문에 한글 성경에 ‘천국’이란 단어가 어느 천국을 의미하는지 알기 어렵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사도가 말한 천국은 하나님의 하늘 왕국이었습니다.
다시 말씀드려서 사도 바울이 모든 핍박과 고난과 환난을 견디어 내고 복음 전파의 사명을 평생동안 감당하게 한 원동력은 하나님의 나라에 대한 소망 때문이었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사도가 이 땅의 삶에서 희미하게 누리고 있는 하나님의 나라이지만, 장차 완성될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서 하나님의 영광으로 가득한 영원한 생명을 누리고 싶은 소망이 그를 그 어떠한 어려움과 고난 속에서도 견딜 수 있도록 했다는 것입니다. 소망이 이처럼 중요합니다. 소망이 없으면 목적도 비젼도 목표도 인내도 없습니다.
고린도후서 12장을 보면 사도 바울은 천국 곧 heaven 에 다녀왔다고 고백했습니다. 그는 환상 중에 천국을 보았고 확신했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천국보다 더 큰 천국인 하나님의 나라에 대해 이처럼 확신에 차서 소망 가운데 모든 것을 견디어 낼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렇지 못했기 때문에 소망이 없는 것일까요? 사도 바울은 보고온 천국을 우리는 아직 본 적이 없기 때문에 소망을 갖지 못하는 것일까요? 결코 그럴 수 없습니다. 사도 바울은 천국만을 보고 왔지만 우리는 더 큰 것을 보았습니다.
한가지 질문을 해보겠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재림을 보았을까요? 새 하늘과 새 땅에 임하는 하나님의 나라를 보았나요? 아마도 모두에게 이 질문이 너무도 어리석게 들릴 것입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하나님께서는 우리 모두가 예수님께서 재림하신 것과 새 하늘과 새 땅에 임하는 하나님의 나라를 이미 보았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사도 요한이 기록한 계시록 1장 1절 말씀을 보면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라. 이는 하나님이 그에게 주사 반드시 속히 일어날 일들을 그 종들에게 보이시려고 그의 천사를 그 종 요한에게 보내어 알게 하신 것이라.” 그러므로 우리가 요한계시록을 읽어 보았다면 우리는 다 하나님께서 보여주시는대로 예수님의 재림과 새 하늘과 새 땅에 임하는 하나님의 나라를 믿음 안에서 보았습니다. 따라서 우리가 이미 보았기 때문에 예수님의 재림과 하나님 나라는 변경될 수도 없고 취소될 수도 없고 흔들릴 수도 없는 사실로 이루어질 것입니다. 우리의 시간 상에서 역사적 사건으로는 이제 곧 속히 일어날 일이지만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 안에서는 이미 일어난 일이며 우리의 신앙생활에서는 바로 오늘이 그날인 것처럼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계시록 전체가 우리에게 소망이 되고 계시록 1장 3절에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복이 바로 무엇보다도 소망이라는 복입니다.
하나님의 나라에 대한 소망…
우리는 하나님의 나라에 대해서 얼마나 알고 있나요? 우리가 어디에 단 며칠만 여행을 가려고 해도 보통 여행지에 대해서 인터넷으로 찾아보고 밤새 일정 짜고 또 다시 짜고 숙박지, 레스토랑, 먹어봐야 할 음식 리스트, 가봐야 할 장소 리스트 만들어가면서 여행가기 몇 주 전 심지어 몇 달 전부터 설레어 하고 잠을 설치기도 하지요. 그런데 정작 우리가 가야할 곳, 우리의 영원한 안식처이자 조국이 될 하나님 나라에 대해서는 얼마나 알고 있고 얼마만큼 그리워하는지요?
하나님께서는 보여주셨지만 우리 마음에서 그것을 소망으로 붙잡지 못했기에 보았어도 눈뜬 장님처럼 보았을 뿐이었고 귀로 들었어도 다른 귀로 내보내고 말았던 것은 아닌가 싶습니다. 하나님께서 보여주신 것조차도 우리는 스스로 거부하면서 하나님께서 주시는 복을 걷어차고 있었던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소망은 우리 영혼의 닻이라고 히브리서 기자는 말했습니다. 소망은 우리의 눈을 고정시켜 줍니다. 우리의 영혼이 흔들리지 않고 딱 중심을 잡고 인내하며 견디어내게 해줍니다. 어떠한 어려움과 고난과 핍박과 시험이나 현실적인 두려움이 와도 흔들리지 않고 하나님만을 바라보며 인내할 수 있도록 합니다. 그래서 우리에게는 절대적으로 소망이 필요합니다. 소망이 없는 크리스찬은 크리스찬이 아니라고 말할 정도입니다.
우리는 요한계시록을 통해서 하나님의 나라를 마음에 품어야 합니다. 비록 요한계시록을 이해하기가 어려워서 좀처럼 읽고 묵상하는 책이 아니라 할지라도 이해할 수 있는 만큼만이라도 살펴보면서 하나님의 나라를 소망해야 합니다. 이 소망이 사도 바울에게 인내와 오래 참음과 사명을 감당하게 한 동력이 되었던 것처럼 우리에게도 동일하게 역사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우리 하나님이 바로 소망의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사도 바울이 로마에 있는 성도들에게 보낸 편지에서 이렇게 권면했습니다. 롬 15:13 “소망의 하나님이 모든 기쁨과 평강을 믿음 안에서 너희에게 충만하게 하사 성령의 능력으로 소망이 넘치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이 소망의 중심에 무엇이 있을까요? 바로 하나님의 나라가 있습니다. 거기에는 우리 하나님과 함께하는 영광으로 가득찬 영원한 삶이 있습니다.
그래서 이 시간에 우리가 하나님의 나라, 새 하늘과 새 땅에 이루어지는 하나님의 나라를 소망하며 마음에 품기 위해서 기도해 보시기를 권면합니다. 지금 현실은 코로나19 바이러스로부터 벗어나고자 하는 소망이 가장 시급한 것처럼 느껴질 수도 있지만 우리는 현실보다 더 큰 것을 먼저 보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나라를 먼저 보고 그 다음에 현실을 본다면 우리는 큰 것을 놓치지 않을 것입니다. 게다가 하나님은 우리에게 이미 그 나라를 보여주셨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이미 보여주신대로 이루어질 하나님 나라를 마음에 품고 그 나라가 임하는 소망 가운에 현실을 인내하며 승리하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소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