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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20.11.14 믿음을 더하소서
  2. 2020.09.05 모든 일에 감사드리자
posted by 풀숨 2020. 11. 14. 07:18

믿음을 더하소서


사도들이 주께 여짜오되 우리에게 믿음을 더하소서 하니

주께서 이르시되 너희에게 겨자씨 한 알만한 믿음이 있었더라면 이 뽕나무더러 뿌리가 뽑혀 바다에 심기어라 하였을 것이요 그것이 너희에게 순종하였으리라 (17:5~6)


요즘 신앙생활 하기가 어떠신가요? 아마 쉽다고 여기시는 분은 그리 많지 않을 듯 싶습니다. 신앙생활이 왜 이리 어려운가 싶기도 하다가 또 어떤 때는 조금 괜찮은 것 같기도 하면서 다람쥐 쳇바퀴 돌듯이 좀 답답하면서도 대체로 어렵다고 느끼실 것 같습니다. 저 뿐만 아니라 많은 성도들이 그럴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러면서 소년 다윗처럼, 물매돌 5개를 들고 거인 골리앗에 맞서 담대하게 오직 하나님을 믿는 믿음으로 나아갔던 다윗처럼 그런 강하고 담대한 믿음이 나에게도 있으면 좋겠다는 희망사항을 마음 깊은 곳에 가지고 있을 것입니다.


새로운 사업을 결정하는 것처럼 큰 일이 닥쳤거나, 또는 자녀들의 진로를 고민하거나 직장 문제 아니면 여러가지 가정 내의 크고 작은 문제들에 있어서 뭔가를 결정하려고 할 때 이런 저런 고민과 염려에 휩싸여 담대하게 결정하지 못하고 이리저리 흔들리는 모습에서 스스로 그렇게 느끼실 때도 많이 있을 것입니다. 이런 저런 고민들 속에서도 한 가지 위로가 되는 것은 이런 고민을 나만 하고 있다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우리 모두는 이러한 고민을 하면서 살고 있습니다. 교회를 다닌지 오래 되었든 얼마 되지 않았든 우리들 삶 가운데 고민은 끊임없이 있었고 그 순간마다 믿음으로 담대히 결정하지 못하고 어려워하는 자신을 보면서 ‘아 나의 믿음은 이 정도 밖에 되지 않는구나’ 하고 생각하셨을 것입니다. 오늘은 그것에 대해서 함께 나누며 우리 주님께서 가르쳐주신 해결책에 대해서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누가복음 17:5~6 말씀은 예수님께서 마지막 고난 주간에 들어서기 조금 전에 제자들과 대화하셨던 내용입니다. 사도들이 3년을 넘게 예수님을 따라다니고 함께 지낸 후에 예수님께 요청드렸던 것이 바로 ‘우리의 믿음을 더하소서’ 또는 ‘우리의 믿음을 증대시켜 주세요’라는 요청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행하셨던 많은 기적들, 죽은 자를 살리고, 앉은뱅이를 일으키시고, 태어나면서부터 장님이었던 사람의 눈을 고쳐주시고, 수 천명의 사람들을 빵 5개와 물고기 2마리로 먹이셨던 여러가지 기적들을 바로 옆에서 체험하고 살펴보고 함께 그 현장에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믿음이 적은 자들이었습니다. 그들 스스로도 너무 답답했었는지 마침내 예수님께 이렇게 요청하였던 것입니다. 아마 이렇게 요청했을 것입니다: 제발 믿음을 자라게 해주세요!!!!!!


우리 주님께서도 때때로 제자들에게 ‘믿음이 적은 자들아’ 하고 책망하셨으니 그들이 이렇게 요청할 때에 예수님께서 그 정도면 됐다 말씀하시지 아니하시고 해결책을 제시해 주셨습니다. 그런데 그 대답을 가만히 살펴 보면 좀 어리둥절하게 됩니다. 일반적으로 그런 요청을 받으면 ‘자 내가 가르쳐 줄테니 잘 따라 해봐라’ 하시면서 ‘첫번째 이렇게 하고, 두번째 이렇게 하고…’ 등 어떤 구체적이고 절차적인 해법, 그래서 제자들이 쉽게 따라해서 믿음이 금방 커질 수 있는 방법을 말씀해주시기를 기대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해법은 그런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바로 이 부분을 주의깊게 살펴보고 우리도 어떻게 해야 믿음이 자랄 수 있는지 배워야 합니다.


예수님의 대답은 “너희에게 겨자씨 한 알만한 믿음이 있었더라면 이 뽕나무더러 뿌리가 뽑혀 바다에 심기어라 하였을 것이요 그것이 너희에게 순종하였으리라”고 하셨습니다. 만약에 지금 이 세상에서 어떤 크리스찬이 말로 명해서 나무 하나를 뿌리째 뽑아올려서 멀리 바다에 심어놓았다면 모든 사람들이 그 사람은 엄청난 믿음의 사람이라고 침이 마르도록 칭찬할 것입니다. 그리고는 전 세계적으로 순식간에 가장 유명한 사람으로 알려졌을 것입니다. 그런데 본문을 가만히 살펴 보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엄청난 믿음의 사람이어야 가능할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을 예수님은 겨자씨 한 알만한 믿음만 있더라도 할 수 있는 일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여러분 모두 잘 아시다시피 겨자씨는 그 당시 이스라엘에서 가장 작은 씨앗이었습니다. 대강 크기가 1mm 정도의 작은 씨앗입니다. 그 작은 겨자씨 한 알만한 믿음으로도 그렇게 엄청난 일을 할 수가 있는 것이라고 가르쳐 주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이렇게 대답해 주신 의미를 4가지로 나누어서 생각해 보겠습니다.

첫째는 믿음에 대한 개념 자체가, 패러다임이 바뀌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 당시의 사도들이나 오늘날 우리들은 믿음에 대해서 생각할 때에 흔히 내가 뭔가 이루어야 하는 것으로 생각합니다. 사도들도 그렇게 하다가 도저히 안 되니까 예수님께 요청했던 것입니다. 믿음을 뭔가 관념적이고 추상적이고 뜬구름 잡는 것처럼 생각하는 분들도 계시겠지만 또 한편으로는 믿음을 내가 수고하고 노력해서 이루어내야 하는 어떤 것으로 생각하시는 분들도 많으실 것입니다. 그런데 이게 잘 안 되니까 어렵게 느끼는 것이지요. 예수님은 이러한 생각 둘 다 아니기에 믿음에 대한 패러다임이 바뀌어야 한다고 가르쳐 주시는 것입니다. 믿음 자체에 어떤 능력이 있고 힘이 있어서 내가 믿음을 소유하고 가져야 하는 어떤 것이라는 생각을 바꿔서, 믿음은 우리 각자와 믿음의 대상이신 하나님 사이의 신뢰 관계라는 것을 이해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누구와 관계를 맺고 이어가고 깊게 할 수는 있지만 관계를 소유할 수는 없습니다. 관계는 소유되는 것이 아니고 함께 만들어 가는 것입니다. 제자들은 믿음을 소유하고자 했습니다. 그것도 크고 좋은 믿음을 소유하고자 했습니다. 그래서 매번 실패했던 것입니다. 믿음은 내가 소유하거나 이루어내는 어떤 것 또는 관념적인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 나와의 신뢰 관계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받을 자격이 전혀 없는 우리에게 은혜로 선물로 맺어주시는 사랑의 관계가 믿음입니다.


둘째는 믿음의 크기가 문제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믿음 자체에 어떤 능력이 있어서 믿음의 내용대로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믿음 자체에 능력이 있다면 큰 믿음으로는 큰 일을 하고 작은 믿음으로는 작은 일만 할 수밖에 없겠지요. 그러나 믿음 자체에 능력이 있는 것이 아니라 믿음의 대상이신 하나님이 능력 있는 분이시기 때문에 믿음의 크기와는 다르게 믿음의 결과는 얼마든지 나타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겨자씨 한 알만한 믿음으로도 이렇게 큰 일을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물론 이렇게 큰 일을 행하신 하나님을 보면서 우리는 더욱 큰 믿음으로 성장해 갈 수 있겠지요. 그러나 큰 믿음을 갖고 있기에 큰 일을 행하게 되는 것은 아닙니다. 믿음의 크기가 문제가 아니라 믿음의 크기 보다는 구하는대로 실천을 하느냐 마느냐에 따라서 다시 말씀드리면 구하는 내용을 내 삶의 현실에 현장에 적용을 하느냐 안 하느냐에 달렸다는 것입니다. 아무리 맛있게 보이고 신선한 사과가 옆에 있다고 하더라도 내가 먹지 않으면 내게는 아무런 영양분을 줄 수가 없습니다. 우리가 아무리 하나님 아버지를 믿고 또 주님을 사랑한다고 고백하며 때로는 눈물도 흘리고 때로는 찬송부르며 소리높이 외친다고 할지라도 하나님 말씀 안에서 구하는대로 내 삶에 적용하여 실천하지 않으면 아무런 소용이 없습니다. 믿음의 크기가 아니라 믿음의 행함입니다. 믿음의 꽃은 행함입니다. 꽃이 피지 않으면 열매가 맺히지 않듯이 행함이 없으면 절대로 열매를 맺을 수 없습니다.


셋째는 믿음의 대상이 일하신다는 것입니다. 앞에서도 잠깐 말씀드렸지만 우리의 능력이나 믿음 자체나 그 무엇이 결과를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인도하심대로 구하는 믿음은 믿음의 대상이신 하나님께서 반드시 이루시겠다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15장 포도나무 비유 말씀을 보시면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7절입니다.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 주님께서 포도나무와 가지를 비유로 해서 주님과 우리의 관계를 설명해 주시면서 가지가 나무에 붙어있기만 하면 당연히 열매를 맺게 된다고 설명해 주시고나서 이렇게 7절 말씀을 주셨습니다. 그러면 가지가 나무에 붙어있기만 하면 즉 우리가 예수님 믿기만 하고 하나님께서 주시는 은혜를 받기만 하면 우리는 아무것도 안 하고 가만히 있어도 자동적으로 열매를 맺게 되는 것일까요? 물론 한 측면은 그렇습니다. 그런데 나머지 한 측면이 있다는 말씀입니다. 우리가 예수님 안에서 구하면, 즉 하나님께서 이루어주실 것을 믿고 구하면 하나님께서 일하셔서 이루시겠다는 말씀을 하셨던 것입니다. 가지가 나무에 붙어 성장하려면 부지런히 양분을 나무로부터 흡수하고 농부가 수고하는대로 잘 양육받아야 하지만 또 한편으로는 그 관계를 토대로 해서 구하여 아버지가 이루어주는 관계, 양방향의 관계로 나아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16절에 보시면 “내 이름으로 아버지께 무엇을 구하든지 다 받게 하려 함이라”고 가르쳐 주셨습니다. 아버지께서 이루어 주시겠다는 것이지요. 우리가 구하는 이유는 우리 능력으로 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할 수 없는 그것을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은혜로 이루어주시는 것을 보면서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 성장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살아계시고 역사하시는 분이시고 나를 사랑하셔서 내가 구하는 대로 이렇게 이루어주시는 분이시구나 하면서 내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 아버지와의 관계가 더욱 깊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믿음 자체가 아니라 믿음의 대상이신 하나님, 살아계신 하나님이 일하셔서 이루어주신다는 것을 명심해야 합니다.


우리가 말로만 구하고 내 삶 속에서는 잊어버리고 사는 것이 아니라 구하는 대로 내 삶 속에 적용해 봐야만 우리는 하나님께서 살아계시고 역사하시는지 알 수 있습니다. 우리가 잘 아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어느 지방에 꽤 오랫동안 비가 내리지 않아 가뭄이 심하였습니다. 그러던 어느 아침 한 목사가 가족들과 함께 하나님께서 비를 주시도록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그리고나서 일하러 나가는데 그냥 나가자 어린 아들이 그 아빠 목사님을 불러서 말하기를 우리가 이렇게 하나님께 기도했으니 조금 있으면 비가 올 것인데 우산을 가져가야 하지 않겠냐고 하였답니다. 그 목사님은 아들의 말에 충격을 받아서 자신의 믿음을 되돌아 보게 되었다는 이야기이지요. 그는 기도를 삶의 현실에 적용하지 않고 말로만 구하고는 정작 삶에서는 자기의 기도를 무시하고 살았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역사하실 때에는 하나님의 영광이 드러나야 하는데 이렇게 사는 사람의 믿음으로는 어떻게 하나님께서 영광받으실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께서 역사하실까요?


물론 그 목사님이 비가 올 것이라고 굳게 믿고 우산을 가져갔다고 할지라도 하나님께서 그날 비를 내려주시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 목사님과 가족들은 최소한 한가지는 하나님으로부터 배웠습니다. 하나님과 교제를 나눈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구하는 과정을 중요하게 생각하신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들은 비가 내리는 데에는 하나님이 정하신 때가 있다는 것을 배웠을 것입니다. 그래서 처음에는 단순히 비가 내리게 해주시기를 바라는 기도가 나중엔 하나님의 뜻을 살피는 기도로 변화되고 하나님의 뜻 가운데 비가 내리는 날을 소망 가운데 기다리며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으로 변화될 것입니다. 이것이 믿음 성장의 비결입니다.


마지막으로는 믿음의 대상이신 하나님의 능력 앞에서 겸손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구한대로 받았다고 해서 마치 내가 무슨 능력이 있는 사람처럼 또는 내 믿음에 무슨 특별함이 있는 것처럼 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누가복음 177절부터 10절까지 예수님께서 계속 이어서 가르쳐 주신 말씀이 바로 이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났을 때에는 하나님을 찬송해야 합니다. 내가 순종해서 열매를 맺고 하나님의 영광이 드러났을 때에는 하나님을 찬양해야 합니다. 내가 순종했기 때문에 하나님의 영광이 드러나게 되었다는 어리석은 생각, 내 순종이 아니었다면 하고 나의 순종을 높이는 생각을 버려야 합니다. 나는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나는 도구로 쓰여졌다는 것만으로도 감사드리며 모든 감사와 영광 오직 하나님께 드려야 합니다. 그래야 그 다음 단계로 계속해서 성장할 수 있습니다. 기독교 역사를 돌아보면 여기에서 실패하여 처음엔 크게 쓰임 받다가 마지막엔 비참하게 끝난 사람도 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믿음의 열매를 맺은 후엔 반드시 겸손해야 다음 단계로 더욱 성장할 수 있다는 것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결론적으로 요약하면, 우리 모두는 다 공통된 한가지 소망을 가지고 있을 것입니다. 나의 믿음이 자라서 나도 다윗처럼 아브라함처럼 사도 바울처럼 베드로처럼 하나님을 신실하게 섬기고 사랑하고 싶다는 소망일 것입니다. 매일매일 믿음이 성장하여 하나님께 쓰임받고 싶다는 소망일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믿음이 자랐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가지고 계실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 있다고 고백하지만 정작 우리 삶에 간섭하시고 역사하시는 하나님, 믿음으로 구했더니 이루어주시는 하나님을 한번도 뵌 적이 없다면 참으로 불행한 삶을 살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 주님이 가르쳐 주신 해법은 바로 이것입니다. 지금 우리가 가지고 있는 믿음의 크기에 연연해 하지 말고, 믿고 구하는대로 우리 삶의 현실에서 현장에서 적용해 보는 것이 가장 확실한 해법이라는 것입니다. 믿음 자체에 어떤 능력이 있는 것도 아니며 큰 일을 하는 신자의 믿음에 뭔가 특별함이 있는 것도 아닙니다. 우리 믿음의 대상이신 하나님께서 일하시기 때문에 우리는 믿음을 통해서 큰 일을 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또 체험적으로 만나야 우리 믿음이 성장할 수 있습니다. 어린아이와 같이 받아들이지 않으면 결코 하나님과 동행할 수 없습니다.


이제부터는 믿음의 크기에 대해서 고민하지 말고 실제 삶의 현실에서 현장에서 실천적인 발걸음을 내밀어야 합니다. 처음엔 망설여지고 안 되면 어떡하지 여러 고민이 생길 수 있지만 그 모든 것조차 다 하나님께 맡기고 실제로 믿음대로 구하는대로 삶에 적용해 보시기 바랍니다. 믿음의 꽃은 행함입니다. 행함이 있어야 열매를 맺습니다. 우리의 믿음의 주님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루실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이루시는 것을 통해서 우리의 믿음은 성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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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풀숨 2020. 9. 5. 00:04

모든 일에 감사드리자

 

범사에 감사하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 (살전5: 18)

여호와께 감사하라 그는 선하시며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시편 136:1)

또 무엇을 하든지 말에나 일에나 다 주 예수의 이름으로 하고 그를 힘입어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하라 (3:17)

 

코로나19 팬데믹이 좀처럼 끝날 것 같지 않아 보이는 현 시점에서 아마도 거의 모든 사람들이 최소한 일정부분이라도 우울한 기분이나 무기력한 느낌 또는 두렵고 초조하고 메마른 마음을 느끼고 있을 것이다. 뭔가 위축되고 마음 한켠이 답답하며 스트레스 받아서 뭔가에 집중도 잘 안 되고 좀 공중에 붕~ 떠있는 듯한 상태에서 지내고 있을 것이다. 우리 모두가 이렇게 어려운 상황을 겪어야만 하는데도 우리는 하나님께 감사드릴 수 있을까? 그런데 성경은 우리가 모든 일에서 하나님께 감사드려야 한다고 권면한다. 모든 일에는 당연히 이처럼 어려운 상황도 포함된다. 어렵고 힘들어서 죽을 것 같은 상황에서도 우리는 하나님께 감사드리는 마음을 가져야 하는데 과연 그럴 수 있는지 그리고 어떻게 해야 그런 마음을 가질 수 있는지 고민해야 한다. 어쩌면 이 팬데믹을 통해서 우리는 더욱 하나님과 친밀해지는 기회를 발견할 수도 있다.

 

성경에는 다양한 사람들이 등장하며 또한 사람의 마음에 대해서 다양하게 묘사하고 있다. 이렇게 다양한 사람들의 다양한 마음 상태 중에서 어떠한 상태일 때에 감사가 나오는 것일까? 또는 그 반대의 경우일까? 사도 바울은 악한 사람들의 전형적인 마음이 바로 하나님께 감사드리지 않는 것이라고 로마서1:21말씀에서 가르쳤다.

 

감사드리는 마음은 어떻게 오는가

감사란 뭔가 받았음에 대한 반응이기에, 하나님께서 역사하셔서 먼저 우리에게 주셔야 우리의 반응으로서 감사드리는 마음이 생길 수 있다. 하나님께서 아무 일도 하지 않으셨고 아무 것도 주지 않으셨는데 우리가 그냥 아무런 이유도 없이 감사드릴 수는 없다. 하나님의 자녀들에게 있어서 모든 감사의 기초는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를 위해 주셨다는 역사적 사실이다. 그리고 더 나아가 하나님이 눈에 보이지 않는다 하더라도 하나님께서 역사하시며 우리를 위해서 모든 필요한 것들을 주셨기에, 또한 하나님께서 온 우주를 주관하시며, 모든 존재의 근원으로서 생명을 주셨기에 감사드릴 수 있다.

 

이와 더불어 감사드리는 마음은 겸손한 사람만이 가질 수 있다. 즉 마음이 가난한 사람만이 감사드릴 수 있다. 몸이 건강하고 가진 것이 많아서 아무런 걱정과 염려가 없이 호의호식하며 교만한 사람은 하나님께 감사드리는 마음을 갖을 수 없다. 부자가 천국에 들어가는 것이 낙타가 바늘귀를 통과하는 것보다 더 어렵다는 주님의 말씀(19:24)을 생각해 보면 금방 알 수 있다. 몸의 상태나 경제적 상태나 그 어떤 것보다도 하나님을 더 사랑하기 때문에 마음이 가난해진 사람은 숨쉬고 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하나님께 감사드릴 수 있다. 그러나 자아로 똘똘 뭉쳐 스스로 모든 것을 다 이루었고 세상의 중심에서 사는 사람이 하나님께 감사드릴 수 있겠는가.

 

그러므로 감사드리는 마음은 겸손하고 가난한 마음에 하나님의 은혜로운 역사의 결과가 인식될 때에 생긴다. 따라서 우리는 항상 겸손하고 가난한 마음을 유지하기 위해 노력해야 하며 하나님의 역사하심을 늘 살펴보며 하나님의 역사의 결과가 어떻게 내 삶에 작용하는지 알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이러한 노력이 없이는 결코 감사드리는 마음을 가질 수 없다. 이런 이유로 인해서 우리는 성경말씀을 늘 묵상해야 한다. 하나님은 하나님에 대해서 우리가 알아야 할 모든 것을 성경에 기록해 놓으셨기 때문이다. 성경을 통해서 우리는 하나님이 무엇을, 언제, 어떻게 하셨는지 그리고 우리의 삶에 어떻게 관여하실지 알 수 있기 때문이다.

 

감사의 유익

예수님께서 감람산에서 가르쳐 주신 말씀인 마태복음 5장의 첫 머리에 보면, 마음이 가난한 사람은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이라고 하셨다. 하나님은 항상 일하시며 우리를 위해 주무시지도 졸지도 아니하시고 은혜로 역사하시므로 우리의 마음이 가난하면 우리는 언제나 하나님께 감사드릴 수 있다. 그리고 감사드림을 통해서 우리는 천국의 삶을 맛보며 즐거워 하고 기쁨이 넘치게 된다. 생명의 활력이 샘솟는 것이다.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자존감이 높아지고 아버지와 더욱 친밀해졌다는 감정을 갖게 된다. 그러므로 바로 지금 고백해 보라, “하나님 아버지, 생명 주셔서 감사합니다하고 고백해 보라. 생명의 활력이 솟아나는 것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이 첫번째 유익이다.

 

또한 진정한 감사는 받은 사람을 준 사람에게 연합시켜 주는 것처럼, 감사드림을 통해서 우리는 하나님과 친밀하게 연합하고 하나님의 마음을 알게 된다. 친밀해진 사이에는 교감을 통해서 서로의 마음을 나누는 것처럼 우리는 하나님의 마음을 알게 된다. 하나님이 우리를 얼마나 아끼고 사랑하시는지, 얼마나 안타까워 하시는지, 또는 얼마나 애타게 부르고 계시는지 알게 된다. 이것이 두번째 유익이다.

 

그리고 하나님의 마음을 알게 되면 우리는 하나님을 닮게 된다. 하나님의 마음에 순종하며 하나 되기 때문이다. 우리 주님이 이것을 가능하게 해주셨다. 요한복음 15장에서 17장까지의 말씀을 보면,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삼위일체 하나님의 아름다운 관계에 들어갈 수 있다고 하셨다. 하나님을 닮게 되는 것이다. 하나님을 닮게 되면 우리는 자연스럽게 이웃을 돌볼 수 있게 된다. 이것이 세번째 유익이다.

 

또한 감사드림을 통해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소망을 발견하게 된다. 감사드리는 마음은 하나님의 계획과 미래에 이루어질 일들에 대해서 기대하는 마음을 갖게 하고, 이는 궁극적으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약속된 모든 것들에 대해 소망을 갖게 한다. 이것이 네번째 유익이다.

 

또한 많은 유익들이 있지만 마지막으로 언급하고 싶은 유익은, 하나님께 감사드리는 마음에는 두려움이 들어올 수 없다는 것이다. 요한일서 4장의 말씀처럼, 하나님의 사랑은 모든 두려움을 쫓아낸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사랑은 어떠한 두려움도 내쫓으며 평안을 가져온다. 감사드림은 바로 그 사랑에 대한 고백이다. 하나님께서 나를 사랑해 주셨음과 내가 하나님을 사랑하고 있음을 모두 포함하는 고백이기에 감사드리는 마음에는 두려움이 없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께 감사드리는 것에 소홀해서는 안 된다. 우리가 감사드릴 때마다 이러한 유익을 누릴 수 있으며 감사가 넘칠수록 이러한 유익도 더욱 넘칠 것이기 때문이다.

 

모든 일에 감사드리는 마음의 중요성

우리가 어떤 특정한 일이나 사건을 통해서 하나님께 감사드릴 수 있겠으나 모든 일에 감사드리는 것은 믿음을 필요로 한다. 마치 그냥 저절로 이루어진 것처럼 보이는 일이나 또는 내가 잘 해서 이루어진 일처럼 보이는 것조차도 모두 하나님의 은혜로 이루어졌다는 것을 알려면 믿음이 필요하다. 하나님 아버지께서 우리 자녀들을 사랑하셔서 우리의 모든 일에 다 함께 하시고 간섭하시며 인도해 주셔서 열매맺도록 하신다는 믿음이 있어야 한다.

 

기도로 질병이 나았다든지 또는 해결할 수 없는 일이 기적적으로 해결되었다든지 하는, 뭔가 특별하고 굉장한 일뿐만 아니라 우리가 보기에 참으로 하찮고 별볼일 없는 것 같은 모든 일에도 하나님은 일하고 계시며 함께 하신다. 우리는 단 한순간도 하나님 없이는 살 수 없는 존재이기 때문에, 마치 세상의 모든 식물이 태양의 열기를 벗어나서는 한순간도 존재할 수 없는 것과 같이, 하나님은 모든 일에서 우리와 함께 하신다. 이것을 믿음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그러면 처음에는 선택적으로 특별한 일에만 감사드렸던 것이 이제는 하나님을 알면 알수록 모든 일에 감사드리게 된다. 믿음이 점점 성장하는 것이다. 내 삶의 모든 영역을 하나님께 내어드리며 하나님의 역사하심을 깨닫고 함께 하게 되는 것이다. 심지어 먹을 것이라고는 김치와 간장밖에 없는 형편일지라도 하나님이 함께 하신다는 믿음과 겸손하고 가난한 마음으로 하나님께 감사드리자. 하나님은 이러한 형편 가운데서도 역사하시며 내게 가장 좋은 것을 주신 것이기 때문이다.

 

감사드리는 마음은 나 스스로에게서 시작되지 않는다. 사도 바울이 로마서에서 가르쳐 준 말씀대로, 악한 마음은 결코 하나님께 감사드리지 않는다. 우리도 하나님의 은혜로 그리스도 안에서 성령님에 의해 거듭나기 전에는 하나님께 반항하고 하나님을 무시하며 감사하는 마음 자체가 없었다. 하나님께서 먼저 사랑하셨고, 먼저 주셨고, 또한 먼저 깨닫게 하셨기 때문에 내가 하나님께 감사드릴 수 있게 되었다. 이것이 나의 어떠한 특정 부분이 아니라 내 삶 전체, 나의 존재 전부를 새롭게 하신 것이기에 나는 모든 일에 있어서 하나님께 감사드리는 것이다.

 

또한 모든 일에 감사드리는 마음은 전적으로 하나님을 의지하고 있다는 것을 증명한다. 나의 자아가 살아서 작용하는 한, 나는 모든 일에 하나님께 감사드릴 수 없다. 어느 특정 부분만큼은  내가 이룬 것이 되고, 최소한 그 부분에 대해서는 나 스스로를 칭찬하며 스스로 뿌듯해 하는 것이 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모든 일에 감사드리는 마음은 내가 하나님을 전적으로 신뢰하며 의지하고 있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삶이야말로 영생을 맛보며 천국의 삶을 사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모든 일에 감사드리는 마음은 처음부터 끝까지 이웃을 사랑할 수 있도록 하며 이웃에게도 감사하는 마음을 갖게 한다. 모든 일에 감사드리는 마음에는 실망이 없고 두려움이 없다. 그래서 이웃을 사랑하면서 행여라도 받게 되는 상처, 즉 유한한 존재끼리 어쩔 수 없이 어긋나게 되고 오해하게 되는 부분까지도 감싸도록 도와준다. 모든 일에 감사를 드림으로써 이 상처가 하나님 안에서 치유되고 우리는 새 힘을 얻어서 항상 평안 가운데 앞으로 나아가게 되기 때문이다.

 

모든 일에 감사드리자

모든 사람에게 요즘은 참으로 어렵다. 매일매일 뉴스를 보는 것이 우울한 일이 되어버렸을 만큼 모두에게 요즘의 상황은 어렵다. 그러나 어려운 상황에서도 역사하시며 일하시는 하나님을 발견하고 또한 나아가 바로 역사하시는 하나님께서 내게 또는 우리에게 주신 것들로 인해서 감사드리는 마음을 가져야 한다. 그래야 어려움을 대해서 우리는 하나님의 뜻과 계획을 있고 두려움 없는 소망을 가질 있다. 더욱이 어느 특정한 것들 뿐만 아니라 모든 일에서 하나님께 감사드리면 보다 계획을 있게 된다.

 

때로는 삶의 고통이 너무도 심해서 욥처럼 하나님을 원망하는 마음이 자꾸만 생긴다 하더라도, 참으로 하찮은 것처럼 생각되는 무엇이라도 발견해서 하나님께 감사드리려고 노력해 보자. 하늘에서 주지 않으면 아무것도 받을 없으며, 아버지께서 이끌지 아니하시면 예수님께 나아갈 있는 사람이 없다는 것을 명심하며, 하나님께서는 어려운 상황을 오히려 하나님의 자녀들과 더욱 친밀해지는 기회로 삼고 그들이 하나님을 더욱 신뢰하게 하신다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감사드리는 마음이 없으면 절대로 이러한 기회를 바라볼 수조차 없다.

 

그러므로 잠시 모든 것을 멈추고 하나님께 집중해서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좋은 것들로 인해서 하나님께 감사드리자. 하나님 아버지, 참으로 감사합니다, 하고 고백해 보자.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의 마음에 넓게 퍼지면서 기쁨과 소망을 발견할 있을 것이다. 이렇게 어려운 상황이 이상 중요한 것이 되지 않고, 오직 하나님 아버지만이 우리의 전부이시며 우리는 하나님 안에서 생명을 누리고 있다는 것을 즐거워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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