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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21.01.16 하나님 나라에 대한 비전
  2. 2020.12.19 하나님 나라에 대한 소망
posted by 풀숨 2021. 1. 16. 06:16

하나님 나라에 대한 비전

 

우리 크리스찬이 지금 현재 육신을 입고 땅에 살면서도 지금 누리는 하나님 나라와 그리고 완성된 하나님 나라를 소망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은 당연한 말이다. 하나님 나라는 하나님이 약속하신 우리의 본향이며 장차 우리는 완성을 보며 그곳에 살게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우리는 하나님 나라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그냥 막연히 좋을 것이라고 생각하거나 단순하게 고통이나 슬픔이 없이 기쁨만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며 사실 별다른 의미를 두고 있지 않는 것은 아닐까 싶다.

 

우리 주님께서 공생애를 시작하시면서 가장 먼저 선포하셨던 말씀이 바로 회개하라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느니라 말씀이다 (1:15). 우리 주님은 우리에게 하나님의 나라를 주시기 위해서 오셨고 마침내 일을 이루셨다. 그리고 주님은 현재 나라의 왕으로서 다스리고 계신다 (5:29~32). 그런데 불행하게도 우리는 주님이 우리에게 주신 하나님의 나라에 대해 거의 관심이 없다. 그저 땅에서 조금이라도 먹고 사는 것에만 관심이 있는 것처럼 보인다. 누가 좋은 차를 몰고 누가 좋은 집에 사는 것과 누구 자식이 명문대에 들어가고 좋은 회사에 취직했다는 것에만 관심이 있다. 그나마 조금이라도 하나님 나라에 대해서 관심이 있다는 사람들은 천국에 다녀왔다는 사람의 간증을 들으면서 막연한 꿈을 꾼다. 여기에 사는 동안 착한 많이 해서 나중에 천국 가면 보석으로 만든 집에서 살아야겠다는 꿈을 꾸는 대부분이다.

 

우리는 최소한, 성경 말씀과 우리가 지금 살고 있는 하나님 나라에 대한 경험을 통해서 앞으로 완성될 하나님 나라는 얼마나 아름답고 영화롭고 멋스러울지 진지하게 연구하며 나라를 바라보며 기대하고 소망하는 것이 마땅할 것이다. 장차 완성될 나라는 어떤 나라일까?

 

먼저 구약 성경이 계시한 하나님 나라의 이미지는 에덴 동산의 이미지이다. 이사야서 11장에 기록된 것처럼 사람과 모든 동물들이 평화롭고 사랑스럽게 함께 어울려 사는 장소로서의 이미지이다. 그곳엔 억압과 착취와 압제와 먹이 사슬이 아니라 서로 어울려 함께 즐겁게 뛰어 노는 평안과 기쁨만이 있다. 그리고 에스겔서 47장에는 생명과 치료와 풍요의 장소로 묘사된다. 신약 성경에서 계시록 21 말씀에 의하면 그곳엔 눈물과 슬픔과 아픔과 사망이 이상 존재하지 않고 하나님이 직접 우리와 함께 하신다. 로마서 14장이 가르쳐주는 하나님 나라는 이젠 먹는 것과 입는 것이 아니라 성령님 안에 있는 의와 평안과 기쁨이다.

 

그러면 이렇게 묘사된 하나님 나라가 우리와는 어떠한 관계에 있게 되는가. 단지 우리는 거기서 살게 되는 것뿐일까 아니면 우리에게 약속된 것은 훨씬 풍성한 것일까. 성경 말씀에 의하면,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에게 약속하신 것은 훨씬 풍성하다. 비록 성경에 자세히 계시되지는 않았지만 숨겨진 힌트들을 모아서 생각해 봐도, 우리가 단순하게 생각하는 것과는 감히 비교도 없을 만큼 우리는 엄청난 복을 받게 된다.

 

첫째,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삼위일체 하나님과 연합됨의 극치를 맛보게 된다 (17:21). 삼위일체 하나님이 하나 되신 것처럼 우리도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 되며 또한 그리스도를 통하여 삼위일체 하나님 안에서 하나 됨으로써 하나님과 연합됨의 극치를 맛보게 된다. 창조물이 창조주와 연합되는 놀라운 일이 일어나는 것이다. 연합은 세상에서는 상상조차 없는 수준의 연합이 것이다.


둘째,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 나라를 상속받는다 (21:7; 22:5). 우리는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 나라를 통치하게 된다는 것이다. 우리는 그냥 하나님 나라에서 살게 되는 정도가 아니라 하나님 나라를 기업으로 받아서 되며 내가 통치하게 되는 것이다. 여기에서 소유의 대상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사랑의 대상을 의미하는 것으로, 것이기에 사랑해야 하는 가지고 사는 삶이 되는 것이다.


셋째, 우리는 하나님 나라에서 마음껏 정성 다해서 하나님을 사랑하게 되고 우리 자신을 드릴 있게 된다 (12:1). 그리스도처럼 우리는 우리 자신을 제물로 하나님께 순전하고 완전하게 드릴 있게 되어 우리의 기쁨이 넘치게 된다. 우리는 영광의 몸을 입고 이상 죄와 악에 조금도 얽매이지 않으며 (요일3:6), 완전히 자유롭고 순전한 마음으로 하나님을 사랑할 있게 된다.  


넷째, 우리에게 창조와 능력의 영이신 성령님이 내주하심으로 말미암아 우리는 창조의 능력을 통해서 창조 세계를 더욱 풍성하게 함으로써 하나님께 영광을 드리게 된다 (1:2). 성령님은 날마다 우리를 그리스도에게 더욱 친밀하게 연합시키시며 하나님의 깊은 속까지도 우리에게 가르쳐 주시고 (고전2:10),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까지 성장하도록 도우신다 (4:13). 그래서 이제는 하나님을 얼굴을 마주보며 아는 것처럼 알게 되고 (고전13:12; 3:10), 하나님 품에 완전히 안겨서 살게 된다.


다섯째, 우리는 그리스도가 우리를 사랑하시는 것처럼 우리를 서로 사랑하게 된다 (13:34). 세상에서 살면서 수많은 제약과 한계와 오해로 인해서 마음껏 사랑하지 못했던 것이 이제는 아무런 제약과 한계와 오해가 없이 서로 마음껏 사랑하며 섬기며 즐거워 하는 관계가 된다. 그리스도 안에서 모두가 가족이므로 언어와 문화와 인종과 육체적 한계를 극복하고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부부보다 친밀해지는 것이며, 그리스도를 조금이라도 닮은 사람이 다른 사람을 섬기고 끌어주며 함께 그리스도를 더욱 닮아가는 삶을 나누게 된다. 다양한 문화 속에서도 모두 하나님께 영광과 감사와 찬송을 드리며 한 마음으로 기뻐하게 된다.


마지막으로는, 하늘과 땅은 세상과는 비교도 없이 아름다운 세상이 된다 (21:4~5). 하나님의 진리가 가장 아름다운 형태로 구현되기 때문에 하늘과 땅은 모든 곳이 아름다우며, 어느 곳에서도 눈물과 슬픔과 추함이 없고 극치의 아름다움을 느끼게 된다. 하나님의 아름다움을 어느 곳에서나 있고 느낄 있으며 모든 성도가 간절히 소망했던 하나님의 아름다움이 구현된 세상이 된다.

 

하나님은 영원무궁하시기에 창조물인 우리가 아무리 접근해도 하나님은 영원히 초월적인 분이시며 우리에게 언제나 새로운 기쁨을 주신다. 기쁨에 대비되는 슬픔이 있어야 기쁨을 알게 되는 세상의 삶과는 달리, 완성된 하나님 나라에서는 언제나 새로운 기쁨이 존재한다. 하나님은 그만큼 크신 분이시며 하나님의 창조 세계는 하나님의 성품이 극치로 구현된 세상이 된다.

 

이제 다시 생각해 보자. 이러한 하나님 나라에서 보석으로 지은 집이 필요하겠는가. 성경에 보석으로 묘사된 많은 것들이 하나님 안에서 아름다움의 극치를 표현하기 위한 것은 아니었을까. 하늘과 땅의 아름다움을 우리가 이해할 있도록 설명할 있는 단어가 보석뿐이기에 각종 보석으로 치장된 묘사가 들어있는 것이다.

 

땅에서 누리는 하나님의 나라에서 주님을 닮은 인생을 사람, 그리스도 안에서 선한 행위로 하나님께 영광을 많이 드린 사람은 천상에 있는 예루살렘에서나 또는 장차 임할 완성된 하나님 나라에서 만큼 하나님과 친밀하게 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현재의 삶에서 선행을 많이 함으로써 천상의 예루살렘에서나 또는 완성된 하나님 나라에서 보석으로 만든 집을 보상으로 받게 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아는 지식의 깊이나 너비나 높이가 크고 창조의 영이신 성령님과 함께 창조의 능력이 발휘되는 영역과 크기가 크며 하나님의 영광을 누리는 차원이 높고 오묘하게 되는 것이다. 영생은 유일하신 하나님과 그가 보내신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니이다(17:3) 말씀을 곰곰히 묵상해 보면 성령님께서 영원한 생명이 무엇인지 가르쳐 주실 것이다.

 

그러므로 장차 완성될 하나님 나라를 소망하고 기대하며 우리가 정성 다해서 다해서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그날을 기다리자. 세상의 삶에서 눈을 들어 하나님 나라를 바라보자. 비록 우리가 발은 땅에 딛고 살고 있지만, 발은 땅을 디디면서 눈은 들어서 하늘 보좌에 계시는 하나님과 하나님께서 장차 완성하실 하늘과 땅을 깨닫고 기대하자. 더욱이 코로나 팬데믹으로 인해서 마치 모든 것이 절망적인 것처럼 보이는 현실에 주저앉지 말고, 마침내 이루실 하나님을 바라보며 하나님의 위대하심에 기대어 보자. 하나님은 자신의 약속을 반드시 이루시는 분이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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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풀숨 2020. 12. 19. 22:44

하나님 나라에 대한 소망

 

주께서 내 곁에 서서 나에게 힘을 주심은 나로 말미암아 선포된 말씀이 온전히 전파되어 모든 이방인이 듣게 하려 하심이니 내가 사자의 입에서 건짐을 받았느니라 주께서 나를 모든 악한 일에서 건져내시고 또 그의 천국에 들어가도록 구원하시리니 그에게 영광이 세세무궁토록 있을지어다 아멘 (딤후 4:17~18)

 

이제 겨울이 되었습니다. 며칠 전에는 이곳에도 눈이 많이 내리고 날씨가 추워져서 겨울을 실감하고 있지요. 눈이 내리고나서 비가 조금 온 후에 온도가 영하로 내려가니까 눈이 녹다가 얼었는데 집 앞에 있는 나무에는 눈꽃이 피었다가 투명한 얼음꽃으로 아름답게 변하는 것도 보았습니다. 삭막한 것 같은 겨울에도 아름다움은 여전히 빛이 납니다.

 

디모데후서는 모두 다 잘 알고 있다시피 사도 바울의 마지막 서신입니다. 이 서신을 마지막으로 바울은 로마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말미암아 순교하였습니다. 그의 생애 중 가장 마지막 날들에 그는 과연 어떤 신앙을 고백하고 있을까 살펴보고 우리 또한 사도 바울처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인해서 어떠한 어려움과 고난을 당하더라도 능히 이겨낼 수 있도록 우리는 담대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특히나 요즘처럼 코로나19 바이러스로 인해서 하루에도 수천 명이 인생을 마감하는 시기에는 더욱 그렇습니다.

 

오늘날 우리가 처한 주변 환경이나 상황들을 돌아보았을 때 우리는 별로 종교의 자유를 위한 소망이 필요하지 않는 시대를 살고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3 세계의 나라들이나 중국, 북한 같은 곳에서 선교하시는 분들의 이야기는 많이 다르겠지만, 웬만한 국가들에서는 종교의 자유가 보장되어 있고 또 먹을 것과 입을 것이 넉넉한 환경에 있기에 비록 삶이 고단하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소망이라고까지 할 만한 핍박이나 환난을 겪으면서 신앙생활을 하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전체 인류가 코로나19로 인해서 전염병에 대한 두려움으로부터 벗어나고자 하는 현실적인 소망을 갖고 사는 시대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특별한 계획 아래서 전체 인류에게 임한 이 두려움은 사람들이 이전과는 다른 생각을 하도록 이끌고 있습니다. 그저 한결같이 그냥 지나갈 것만 같았던 삶이 이제는 여행도 할 수 없고 친구들과도 대면하여 만날 수 없는 고통을 겪어야 하는 삶으로 바뀌었습니다. 그래서 모든 사람에게 한가지 소망이 생겼습니다. 이 코로나가 하루라도 빨리 지구상에서 사라졌으면 하는 현실적인 소망을 매일매일 모두가 이야기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좀 더 크게 보아야 합니다. 우리가 평소에는 사랑을 강조하며 이렇게 많이들 말합니다. “믿음, 소망, 사랑, 그중에 제일은 사랑이라라고요. 이 말씀은 고린도전서 13장에 기록된 말씀인데, 정확한 말씀은 그런즉 믿음, 소망, 사랑, 이 세 가지는 항상 있을 것인데 그 중의 제일은 사랑이라입니다. 믿음과 소망과 사랑은 항상 있을 것이라고 하나님께서 가르쳐 주셨습니다. 이 땅의 삶에서 어떠한 이유로든, 그리고 심지어 새 하늘과 새 땅에 가더라도 역시나 소망은 항상 있을 것입니다. 항상 있을 소망은 무엇일까요?

 

사도 바울 역시 자신의 삶이 소망으로 인하여 확고해질 수 있었다고 고백합니다. 딤후 4:18 말씀을 보면, “주께서 나를 모든 악한 일에서 건져내시고 또 그의 천국에 들어가도록 구원하시리니 그에게 영광이 세세무궁토록 있을지어다 아멘.” 이 말씀에서 천국은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천국 곧 성도가 죽은 다음에 가는 천국을 이야기 하는 것이 아닙니다. 물론 사도 바울은 죽어서 천국에 갔습니다만 이 구절에서 사도 바울이 말하는 천국은 그 천국이 아니라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를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성도가 죽으면 가게 되는 천국은 영어로 하면 ‘heaven’입니다. 하늘입니다. 영어로는 heaven 이란 단어가 단순히 하늘 sky 라는 뜻 보다 더 깊은 의미를 가지고 있어서 한글로 번역할 때에는 하늘 또는 천국으로 번역을 합니다. 그런데 이렇게 번역을 하다 보니 문제가 생겼습니다. ‘The heavenly kingdom’ 또는 ‘The kingdom of heaven 하늘의 왕국역시 한자로는 천국으로 번역되기 때문에 한글 성경에 천국이란 단어가 어느 천국을 의미하는지 알기 어렵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사도가 말한 천국은 하나님의 하늘 왕국이었습니다.

 

다시 말씀드려서 사도 바울이 모든 핍박과 고난과 환난을 견디어 내고 복음 전파의 사명을 평생동안 감당하게 한 원동력은 하나님의 나라에 대한 소망 때문이었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사도가 이 땅의 삶에서 희미하게 누리고 있는 하나님의 나라이지만, 장차 완성될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서 하나님의 영광으로 가득한 영원한 생명을 누리고 싶은 소망이 그를 그 어떠한 어려움과 고난 속에서도 견딜 수 있도록 했다는 것입니다. 소망이 이처럼 중요합니다. 소망이 없으면 목적도 비젼도 목표도 인내도 없습니다.

 

고린도후서 12장을 보면 사도 바울은 천국 곧 heaven 에 다녀왔다고 고백했습니다. 그는 환상 중에 천국을 보았고 확신했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천국보다 더 큰 천국인 하나님의 나라에 대해 이처럼 확신에 차서 소망 가운데 모든 것을 견디어 낼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렇지 못했기 때문에 소망이 없는 것일까요? 사도 바울은 보고온 천국을 우리는 아직 본 적이 없기 때문에 소망을 갖지 못하는 것일까요? 결코 그럴 수 없습니다. 사도 바울은 천국만을 보고 왔지만 우리는 더 큰 것을 보았습니다.

 

한가지 질문을 해보겠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재림을 보았을까요? 새 하늘과 새 땅에 임하는 하나님의 나라를 보았나요? 아마도 모두에게 이 질문이 너무도 어리석게 들릴 것입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하나님께서는 우리 모두가 예수님께서 재림하신 것과 새 하늘과 새 땅에 임하는 하나님의 나라를 이미 보았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사도 요한이 기록한 계시록 1 1절 말씀을 보면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라. 이는 하나님이 그에게 주사 반드시 속히 일어날 일들을 그 종들에게 보이시려고 그의 천사를 그 종 요한에게 보내어 알게 하신 것이라.” 그러므로 우리가 요한계시록을 읽어 보았다면 우리는 다 하나님께서 보여주시는대로 예수님의 재림과 새 하늘과 새 땅에 임하는 하나님의 나라를 믿음 안에서 보았습니다. 따라서 우리가 이미 보았기 때문에 예수님의 재림과 하나님 나라는 변경될 수도 없고 취소될 수도 없고 흔들릴 수도 없는 사실로 이루어질 것입니다. 우리의 시간 상에서 역사적 사건으로는 이제 곧 속히 일어날 일이지만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 안에서는 이미 일어난 일이며 우리의 신앙생활에서는 바로 오늘이 그날인 것처럼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계시록 전체가 우리에게 소망이 되고 계시록 1 3절에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복이 바로 무엇보다도 소망이라는 복입니다.

 

하나님의 나라에 대한 소망

우리는 하나님의 나라에 대해서 얼마나 알고 있나요? 우리가 어디에 단 며칠만 여행을 가려고 해도 보통 여행지에 대해서 인터넷으로 찾아보고 밤새 일정 짜고 또 다시 짜고 숙박지, 레스토랑, 먹어봐야 할 음식 리스트, 가봐야 할 장소 리스트 만들어가면서 여행가기 몇 주 전 심지어 몇 달 전부터 설레어 하고 잠을 설치기도 하지요. 그런데 정작 우리가 가야할 곳, 우리의 영원한 안식처이자 조국이 될 하나님 나라에 대해서는 얼마나 알고 있고 얼마만큼 그리워하는지요?

 

하나님께서는 보여주셨지만 우리 마음에서 그것을 소망으로 붙잡지 못했기에 보았어도 눈뜬 장님처럼 보았을 뿐이었고 귀로 들었어도 다른 귀로 내보내고 말았던 것은 아닌가 싶습니다. 하나님께서 보여주신 것조차도 우리는 스스로 거부하면서 하나님께서 주시는 복을 걷어차고 있었던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소망은 우리 영혼의 닻이라고 히브리서 기자는 말했습니다. 소망은 우리의 눈을 고정시켜 줍니다. 우리의 영혼이 흔들리지 않고 딱 중심을 잡고 인내하며 견디어내게 해줍니다. 어떠한 어려움과 고난과 핍박과 시험이나 현실적인 두려움이 와도 흔들리지 않고 하나님만을 바라보며 인내할 수 있도록 합니다. 그래서 우리에게는 절대적으로 소망이 필요합니다. 소망이 없는 크리스찬은 크리스찬이 아니라고 말할 정도입니다.

 

우리는 요한계시록을 통해서 하나님의 나라를 마음에 품어야 합니다. 비록 요한계시록을 이해하기가 어려워서 좀처럼 읽고 묵상하는 책이 아니라 할지라도 이해할 수 있는 만큼만이라도 살펴보면서 하나님의 나라를 소망해야 합니다. 이 소망이 사도 바울에게 인내와 오래 참음과 사명을 감당하게 한 동력이 되었던 것처럼 우리에게도 동일하게 역사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우리 하나님이 바로 소망의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사도 바울이 로마에 있는 성도들에게 보낸 편지에서 이렇게 권면했습니다. 15:13 “소망의 하나님이 모든 기쁨과 평강을 믿음 안에서 너희에게 충만하게 하사 성령의 능력으로 소망이 넘치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이 소망의 중심에 무엇이 있을까요? 바로 하나님의 나라가 있습니다. 거기에는 우리 하나님과 함께하는 영광으로 가득찬 영원한 삶이 있습니다.

 

그래서 이 시간에 우리가 하나님의 나라, 새 하늘과 새 땅에 이루어지는 하나님의 나라를 소망하며 마음에 품기 위해서 기도해 보시기를 권면합니다. 지금 현실은 코로나19 바이러스로부터 벗어나고자 하는 소망이 가장 시급한 것처럼 느껴질 수도 있지만 우리는 현실보다 더 큰 것을 먼저 보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나라를 먼저 보고 그 다음에 현실을 본다면 우리는 큰 것을 놓치지 않을 것입니다. 게다가 하나님은 우리에게 이미 그 나라를 보여주셨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이미 보여주신대로 이루어질 하나님 나라를 마음에 품고 그 나라가 임하는 소망 가운에 현실을 인내하며 승리하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소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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