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 나라에 대한 비전
우리 크리스찬이 지금 현재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살면서도 지금 누리는 하나님 나라와 그리고 완성된 하나님 나라를 소망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은 당연한 말이다. 하나님 나라는 하나님이 약속하신 우리의 본향이며 장차 우리는 그 완성을 보며 그곳에 살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우리는 그 하나님 나라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그냥 막연히 좋을 것이라고 생각하거나 단순하게 고통이나 슬픔이 없이 기쁨만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며 사실 별다른 의미를 두고 있지 않는 것은 아닐까 싶다.
우리 주님께서 공생애를 시작하시면서 가장 먼저 선포하셨던 말씀이 바로 “회개하라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느니라”는 말씀이다 (막1:15). 우리 주님은 우리에게 하나님의 나라를 주시기 위해서 오셨고 마침내 그 일을 이루셨다. 그리고 주님은 현재 그 나라의 왕으로서 다스리고 계신다 (행5:29~32). 그런데 불행하게도 우리는 주님이 우리에게 주신 하나님의 나라에 대해 거의 관심이 없다. 그저 이 땅에서 조금이라도 더 잘 먹고 잘 사는 것에만 관심이 있는 것처럼 보인다. 누가 좋은 차를 몰고 누가 좋은 집에 사는 것과 누구 자식이 명문대에 들어가고 좋은 회사에 취직했다는 것에만 관심이 있다. 그나마 조금이라도 하나님 나라에 대해서 관심이 있다는 사람들은 천국에 다녀왔다는 사람의 간증을 들으면서 막연한 꿈을 꾼다. 여기에 사는 동안 착한 일 많이 해서 나중에 천국 가면 보석으로 만든 집에서 살아야겠다는 꿈을 꾸는 게 대부분이다.
우리는 최소한, 성경 말씀과 우리가 지금 살고 있는 하나님 나라에 대한 경험을 통해서 앞으로 완성될 하나님 나라는 얼마나 아름답고 영화롭고 멋스러울지 진지하게 연구하며 그 나라를 바라보며 기대하고 소망하는 것이 마땅할 것이다. 장차 완성될 나라는 어떤 나라일까?
먼저 구약 성경이 계시한 하나님 나라의 이미지는 에덴 동산의 이미지이다. 이사야서 11장에 기록된 것처럼 사람과 모든 동물들이 평화롭고 사랑스럽게 함께 어울려 사는 장소로서의 이미지이다. 그곳엔 억압과 착취와 압제와 먹이 사슬이 아니라 서로 어울려 함께 즐겁게 뛰어 노는 평안과 기쁨만이 있다. 그리고 에스겔서 47장에는 생명과 치료와 풍요의 장소로 묘사된다. 신약 성경에서 계시록 21장 말씀에 의하면 그곳엔 눈물과 슬픔과 아픔과 사망이 더 이상 존재하지 않고 하나님이 직접 우리와 함께 하신다. 로마서 14장이 가르쳐주는 하나님 나라는 이젠 먹는 것과 입는 것이 아니라 성령님 안에 있는 의와 평안과 기쁨이다.
그러면 이렇게 묘사된 하나님 나라가 우리와는 어떠한 관계에 있게 되는가. 단지 우리는 거기서 살게 되는 것뿐일까 아니면 우리에게 약속된 것은 훨씬 더 풍성한 것일까. 성경 말씀에 의하면,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에게 약속하신 것은 훨씬 더 풍성하다. 비록 성경에 자세히 계시되지는 않았지만 숨겨진 힌트들을 모아서 생각해 봐도, 우리가 단순하게 생각하는 것과는 감히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우리는 엄청난 복을 받게 된다.
첫째,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삼위일체 하나님과 연합됨의 극치를 맛보게 된다 (요17:21). 삼위일체 하나님이 하나 되신 것처럼 우리도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 되며 또한 그리스도를 통하여 삼위일체 하나님 안에서 하나 됨으로써 하나님과 연합됨의 극치를 맛보게 된다. 창조물이 창조주와 연합되는 놀라운 일이 일어나는 것이다. 이 연합은 이 세상에서는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수준의 연합이 될 것이다.
둘째,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 나라를 상속받는다 (계21:7; 22:5). 우리는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 나라를 통치하게 된다는 것이다. 우리는 그냥 하나님 나라에서 살게 되는 정도가 아니라 하나님 나라를 기업으로 받아서 ‘내 것’이 되며 내가 통치하게 되는 것이다. 여기에서 ‘내 것’은 소유의 대상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사랑의 대상을 의미하는 것으로, 내 것이기에 더 사랑해야 하는 ‘내 것’을 가지고 사는 삶이 되는 것이다.
셋째, 우리는 하나님 나라에서 마음껏 온 정성 다해서 하나님을 사랑하게 되고 우리 자신을 드릴 수 있게 된다 (롬12:1). 그리스도처럼 우리는 우리 자신을 산 제물로 하나님께 순전하고 완전하게 드릴 수 있게 되어 우리의 기쁨이 넘치게 된다. 우리는 영광의 몸을 입고 더 이상 죄와 악에 조금도 얽매이지 않으며 (요일3:6), 완전히 자유롭고 순전한 마음으로 하나님을 사랑할 수 있게 된다.
넷째, 우리에게 창조와 능력의 영이신 성령님이 내주하심으로 말미암아 우리는 창조의 능력을 통해서 창조 세계를 더욱 풍성하게 함으로써 하나님께 영광을 드리게 된다 (창1:2). 성령님은 날마다 우리를 그리스도에게 더욱 친밀하게 연합시키시며 하나님의 깊은 속까지도 우리에게 가르쳐 주시고 (고전2:10),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까지 성장하도록 도우신다 (엡4:13). 그래서 이제는 하나님을 얼굴을 마주보며 아는 것처럼 알게 되고 (고전13:12; 골3:10), 하나님 품에 완전히 안겨서 살게 된다.
다섯째, 우리는 그리스도가 우리를 사랑하시는 것처럼 우리를 서로 사랑하게 된다 (요13:34). 이 세상에서 살면서 수많은 제약과 한계와 오해로 인해서 마음껏 사랑하지 못했던 것이 이제는 아무런 제약과 한계와 오해가 없이 서로 마음껏 사랑하며 섬기며 즐거워 하는 관계가 된다. 그리스도 안에서 모두가 다 한 가족이므로 언어와 문화와 인종과 육체적 한계를 극복하고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부부보다 더 친밀해지는 것이며, 그리스도를 조금이라도 더 닮은 사람이 다른 사람을 섬기고 끌어주며 함께 그리스도를 더욱 닮아가는 삶을 나누게 된다. 다양한 문화 속에서도 모두 하나님께 영광과 감사와 찬송을 드리며 한 마음으로 기뻐하게 된다.
마지막으로는, 새 하늘과 새 땅은 현 세상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이 아름다운 세상이 된다 (계21:4~5). 하나님의 진리가 가장 아름다운 형태로 구현되기 때문에 새 하늘과 새 땅은 모든 곳이 다 아름다우며, 그 어느 곳에서도 눈물과 슬픔과 추함이 없고 극치의 아름다움을 느끼게 된다. 하나님의 아름다움을 어느 곳에서나 볼 수 있고 느낄 수 있으며 모든 성도가 간절히 소망했던 하나님의 아름다움이 구현된 세상이 된다.
하나님은 영원무궁하시기에 창조물인 우리가 아무리 접근해도 하나님은 영원히 초월적인 분이시며 우리에게 언제나 새로운 기쁨을 주신다. 기쁨에 대비되는 슬픔이 있어야 기쁨을 알게 되는 현 세상의 삶과는 달리, 완성된 하나님 나라에서는 언제나 새로운 기쁨이 존재한다. 하나님은 그만큼 크신 분이시며 하나님의 창조 세계는 하나님의 성품이 극치로 구현된 세상이 된다.
이제 다시 생각해 보자. 이러한 하나님 나라에서 보석으로 지은 집이 필요하겠는가. 성경에 보석으로 묘사된 많은 것들이 하나님 안에서 아름다움의 극치를 표현하기 위한 것은 아니었을까. 새 하늘과 새 땅의 아름다움을 우리가 이해할 수 있도록 설명할 수 있는 단어가 보석뿐이기에 각종 보석으로 치장된 묘사가 들어있는 것이다.
이 땅에서 누리는 하나님의 나라에서 주님을 좀 더 닮은 인생을 산 사람, 즉 그리스도 안에서 선한 행위로 하나님께 영광을 많이 드린 사람은 천상에 있는 새 예루살렘에서나 또는 장차 임할 완성된 하나님 나라에서 그 만큼 더 하나님과 친밀하게 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현재의 삶에서 선행을 많이 함으로써 천상의 새 예루살렘에서나 또는 완성된 하나님 나라에서 보석으로 만든 집을 보상으로 받게 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아는 지식의 깊이나 너비나 높이가 더 크고 또 창조의 영이신 성령님과 함께 창조의 능력이 발휘되는 영역과 크기가 더 크며 하나님의 영광을 누리는 차원이 더 높고 오묘하게 되는 것이다. 영생은 곧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가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니이다(요17:3)는 말씀을 곰곰히 묵상해 보면 성령님께서 영원한 생명이 무엇인지 가르쳐 주실 것이다.
그러므로 장차 완성될 하나님 나라를 소망하고 기대하며 우리가 온 정성 다해서 온 맘 다해서 하나님을 사랑하고 또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그날을 기다리자. 이 세상의 삶에서 눈을 들어 하나님 나라를 바라보자. 비록 우리가 발은 이 땅에 딛고 살고 있지만, 발은 땅을 디디면서 눈은 들어서 하늘 보좌에 계시는 하나님과 하나님께서 장차 완성하실 새 하늘과 새 땅을 깨닫고 기대하자. 더욱이 코로나 팬데믹으로 인해서 마치 모든 것이 절망적인 것처럼 보이는 현실에 주저앉지 말고, 마침내 이루실 하나님을 바라보며 하나님의 위대하심에 기대어 보자. 하나님은 자신의 약속을 반드시 이루시는 분이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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