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작시'에 해당되는 글 51건

  1. 2022.03.08 생일 선물
  2. 2021.08.14 밤의 틈에서
  3. 2021.08.14 아침 산책
  4. 2021.07.31 울음 총량의 법칙 1
  5. 2021.05.29 웃, 혼자 선
  6. 2021.05.15 침묵에게
  7. 2021.04.04 봄날
  8. 2021.02.13 덴버 1700 마일
posted by 풀숨 2022. 3. 8. 11:05

생일 선물

 

 

이재이

 

 

생일을 특별하게 만드는 것은

손글씨 카드와 포장된 선물

 

케익에 숫자를 켜고

잠시 눈을 감은 채 후- 부는 것은

기대하는 마음의 준비

 

만년필과 시집을 받고

시집 속지에 쓴다

- 2019년 5월 5일 생일 선물로 받다

 

선물 열어

첫 시를 읽는다

 

시집을 곁에 두는 것은

펜을 부끄러워 하지 않는 것

태어난 기념으로

수고하는 인생을 시로 남기는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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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풀숨 2021. 8. 14. 23:35

밤의 틈에서   

 

 

이재이

 

 

혼자 산다는 것은

잠은 오는데 잠들고 싶지 않은 밤과 같아

꺼낼 수 있는 기억들을 다 꺼내 안아주는 것

핸드폰에 저장된 사진들

카메라 보며 스스로에게 말하는 동영상들

SNS 통에 버려진 의미와 진실

 

기억의 틈을 잇는 진공의 암흑에너지

버티게 하는

방 안을 낯설게 서성이다가

문지방에 낀 쌀 알을 하나씩 줍는다

술로 시간을 잃고 싶지 않아

밤 바닷가 사진의 배경, 푸른 물 길어 

주워 모은 쌀로 밥을 짓는데

밖에는 사람들 틈에서 비늘 돋아나

밥 짓는 연기는 방 안에서 껍질 딱딱한 알을 낳고

혼자 구르니

 

힘껏 오른팔 뻗어 핸드폰 쥐고

왼손 손가락 두 개를 편 채 얼굴 사진으로

알을 삼킨다

밥 한 술, 한 술에 알이 깨지는 

불그스름한 무정란 깨지는 밤의 틈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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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풀숨 2021. 8. 14. 10:09

아침 산책

 

 

이재이

 

 

또로롱 호오잇 촉촉촉촉

비스듬히 비쳐드는 햇빛, 머리칼 쓸어올리는 바람

숲 정문에서 네가 인사한다

저만치 강아지풀 속으로 사라진 토끼

몸에는 나무들이 밤새 모은 한 방울 향수

그 사잇길을 너와 걷는다

너는 쉬지 않고 노래한다

어떤 질문에도 대답 대신 가볍게 찡그리며

귀 기울여 들으려 하면 멈추고

듣지 않는 듯 걸으면 들리는 숲의 합창

아마 그때 쯤이었다

풀잎 이슬과 나뭇잎에 산란된 햇빛으로

아득해지는 순간, 들리는 목소리

  - 찾지 말아요 느껴요 언제나 여기 있어요

굿모닝 인사를 건네는 동네 사람 뒤로

숲의 끝이 나타난다

앨리스 안녕! 내일 아침에 올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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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풀숨 2021. 7. 31. 16:50

울음 총량의 법칙

 

 

이재이

 

 

숲이 감푸른 숨으로 신음한다

십칠 년 동안 땅 속에서 웅크려 껍질 벗고

지상에 올라와 한 달 동안

삶을 쏟아내는

매미 안고 몸살을 앓는다

그래서 운다

동시에 울어야 멀리 퍼지는 것을 아는가 보다

숲도 나무도 매미도 새도 풀도

야생화도 함께 운다

울다 울다 지쳐 마른다

아스팔트가 아지랑이 숨으로 신음한다

열 달을 배속에서 웅크리고 세상에 나와

팔십 여년 몸살 앓는 우리

매미의 울음을 가늘고 얕게

나누어 길바닥에서 운다

아무도 함께 하지 않는

드러내고 울 수 없는 울음

이불 덮고 손등으로 닦아내면

숲이 야위어

차갑게 속으로 삼키는 것처럼

야생화, 악몽에 떠는 것처럼

밤은 지나가고 다른

작은 분량의 울음이 길모퉁이에서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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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풀숨 2021. 5. 29. 05:11

웃, 혼자 선  

 

 

이재이

 

 

운동장에 꼬물꼬물 아이들이 축구를 하고 있다

골대 옆에서 뭔가 바닥에 적고 있는 ㄹ

축구장 밖에서 풀과 흙으로 밥 짓고 있는 ㅂ

소리 지르며 이쪽 저쪽 뛰어다니기만 하는 ㅅ과 ㅈ

자기 골대로 공을 몰고 가는 ㅎ

어느 골대든 공이 들어가면 무조건 박수치는 아이들

주변을 배회하는 ㄱ

한 ㅈ이 뛰다가 넘어져 운다

ㅂ이 달려가 호~ 하고 ㅈ을 달래니 ㅊ이 되고

웃웃 함께 손잡고 일어서기까지 

초등학교 그리고 5월

울음이 떨어졌던 자리에 돌멩이가 있는지

밥은 다 지어졌는지 보러 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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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풀숨 2021. 5. 15. 20:06

침묵에게

 

 

이재이

 

 

말(言)은 숨은 선(線)

그어지는 궤적대로 너와 나를 좌표에 세운다

속마음 깊이 따라

선은 짙은 두께로 공중에 새겨지고

공간이 뭉텅 잘려 나간다

나의 윤곽은 딱딱한 점이 되어

신호등처럼 뒷머리에 판화로 뜬다

암실에서 색칠하고 침대 밑에 넣어 둔 채

다시 웃는 얼굴로

슥슥슥 말(言)을 긋는다

 

창문 여는데

전깃줄에 앉아 있던 까마귀

잘려 나간 공간 속으로 줄 하나 길게 끌고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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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풀숨 2021. 4. 4. 23:04

봄날

 

이재이

 

 

이젠 늘어진 티셔츠

대강 보아도 넉넉했어

 

그런데 무엇이 보였던 거야?

보이는 길만 따라 달렸어

뒤돌아 보니 발자국이 모두 지워져 있어

 

두려웠지

궤적 없이 나아가려니 툭

떨어질 것만 같았지

마른 웅덩이에서도 질식할 것 같았지

 

찬찬히 봐야 해

잠은 한 밤으로 만족하는 날

아스팔트 틈 사이로 강아지풀 발견하는 날

보는 것 따라

아침으로 돌아갈 수 있을 거야

 

서로 손을 꼭 잡고

비척비척 느린 걸음으로 산책하는 여든의 노부부에게

물어볼 수도 있을 거야

 

대강 보아도 예뻤어

그리고 자세히 보면 언제나 신비로웠어

카메라에 저장하기 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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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풀숨 2021. 2. 13. 05:57

덴버 1700 마일

 

이재이

 

 

한인 마켓으로 가는 고속도로 표지판에

덴버 1700 마일이 뚜렷한데, 미국에서 20년 지나도록 마일 감각이 없어

대강 암산해 보니 서울에서 부산을 네 번이나 왕복하는 거리다

록키산맥을 끼고 있는 콜로라도 덴버,

흰 눈 이고 짙은 안개 뚫고 맹렬하게 서 있는 산맥

산 중턱 어느 통나무집에서 흘러나오고 있을 것만 같은

컨트리송 가수 존 덴버의 카랑한 노래가

발렌타인 데이 초코렛을 기다리는 연인의 눈동자처럼 꼬셔댄다

미국 친구들은 은퇴하고 대륙을 횡단하는 게 꿈이라서 나도

이 길 따라 가면 되겠구나 싶어 덴버 지나 태평양까지 3000 마일 여행길을 가늠해 본다

하루에 10 시간씩 운전하면 5 일이면 되겠지만, 중간에 콜롬버스, 인디애나폴리스, 세인트 루이스, 덴버, 라스베가스, 로스앤젤레스를 둘러보려면 최소한 2 주일은 걸리겠구나, 차에 기름 넣을 주유소와 식당도 알아 보고 호텔도 필요하겠지

태평양 너머에는 한국도 있겠지

한참 궁리에 빠져 있는데 옆 차가 빠앙 하며 지나간다

 

장 보러 가는 고속도로

하늘로 닿아 있는 언덕길이 새롭다

오늘은 배추김치랑 총각김치도 사서 저녁밥 먹고 지도를 찬찬히 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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