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작시'에 해당되는 글 51건

  1. 2020.08.02 혼자 숨는 저녁
  2. 2020.08.02 비빔국수
  3. 2020.08.02 태풍주의보
posted by 풀숨 2020. 8. 2. 09:04

혼자 숨는 저녁



이재



시를 연습해 보면 안다

얼마나 너를 멀리하는지 행여

가까이한다 해도 살을 비벼준 적이 있는지

얼마나 삶을 고민하는지 행여

고민한다 해도 밤새도록 울어 본 적이 있는지

너의 눈빛에 익숙해지는 것은

싱크대 밑에서 양은냄비를 꺼내

라면을 끓여 신 김치와 함께 상에 내는 것이다

너에게 시간계정을 열고

너의 얼굴에 꽃받침 하는 손이다

비 오는 날

혼자 숨는 저녁이 아니라

비 맞는 몸에 비누 거품을 내는 것이다

서로의 몸에 입술 자국을 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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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풀숨 2020. 8. 2. 09:02

비빔국수



이재이



기냥 국시나 비벼 묵자

외할머니는 가진 것 없는 살림을

손주 위해 맨손으로 빨갛게 물들였다

상 위에 국수 대접 두 개와

동치미 한 그릇

겐차녀?

공부나 허지 여그는 머 헐라고 왔능가

손주가 먹는 모습을

한참 바라보다가 한 젓갈 뜨고는

겐차녀?

동치미 그릇을 앞으로 밀어준다

국수 삶아 찬물에 헹구고

간장 조금에 고추장, 설탕, 미원

김치 국물 넣어 비비고

열무 썰어 올려놓는 게 전부인 한끼

친구들 만날 생각에

후딱 먹고는

할머니, 나 나갔다 올께, 하는

손주 뒷모습을 한참 바라보다가

조심혀, 혼잣말이 오물오물 국수에 얹혀진다

살과 살을 비비면 붉어진다는 걸 나중에

대문 뒤에 숨어서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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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풀숨 2020. 8. 2. 08:58

태풍주의보



이재이



바람이 시작되는 곳

두 눈 찡그리며 그곳이라 여겨지는

한 곳을

오랫동안 바라보았다


바람의 처음은 고요라

바람이 시작되고 0.1초 지난 곳에서

침묵을 바라며

손톱만큼 떨리고 싶었다


어린 양의 울음처럼

무릎 꿇고

깃발 하나 세워놓고 싶었다

비에 씻긴


나부끼지 않고 흔들리는

어둠 속 흐느낌의 노래


하얀 구름벽

문고리 틈으로 보이는 바람집에

커튼을 묶고

산촌 농부처럼

진흙밭 감자꽃 피우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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