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을 더하소서
사도들이 주께 여짜오되 우리에게 믿음을 더하소서 하니
주께서 이르시되 너희에게 겨자씨 한 알만한 믿음이 있었더라면 이 뽕나무더러 뿌리가 뽑혀 바다에 심기어라 하였을 것이요 그것이 너희에게 순종하였으리라 (눅17:5~6)
요즘 신앙생활 하기가 어떠신가요? 아마 쉽다고 여기시는 분은 그리 많지 않을 듯 싶습니다. 신앙생활이 왜 이리 어려운가 싶기도 하다가 또 어떤 때는 조금 괜찮은 것 같기도 하면서 다람쥐 쳇바퀴 돌듯이 좀 답답하면서도 대체로 어렵다고 느끼실 것 같습니다. 저 뿐만 아니라 많은 성도들이 그럴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러면서 소년 다윗처럼, 물매돌 5개를 들고 거인 골리앗에 맞서 담대하게 오직 하나님을 믿는 믿음으로 나아갔던 다윗처럼 그런 강하고 담대한 믿음이 나에게도 있으면 좋겠다는 희망사항을 마음 깊은 곳에 가지고 있을 것입니다.
새로운 사업을 결정하는 것처럼 큰 일이 닥쳤거나, 또는 자녀들의 진로를 고민하거나 직장 문제 아니면 여러가지 가정 내의 크고 작은 문제들에 있어서 뭔가를 결정하려고 할 때 이런 저런 고민과 염려에 휩싸여 담대하게 결정하지 못하고 이리저리 흔들리는 모습에서 스스로 그렇게 느끼실 때도 많이 있을 것입니다. 이런 저런 고민들 속에서도 한 가지 위로가 되는 것은 이런 고민을 나만 하고 있다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우리 모두는 이러한 고민을 하면서 살고 있습니다. 교회를 다닌지 오래 되었든 얼마 되지 않았든 우리들 삶 가운데 고민은 끊임없이 있었고 그 순간마다 믿음으로 담대히 결정하지 못하고 어려워하는 자신을 보면서 ‘아 나의 믿음은 이 정도 밖에 되지 않는구나’ 하고 생각하셨을 것입니다. 오늘은 그것에 대해서 함께 나누며 우리 주님께서 가르쳐주신 해결책에 대해서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누가복음 17:5~6 말씀은 예수님께서 마지막 고난 주간에 들어서기 조금 전에 제자들과 대화하셨던 내용입니다. 사도들이 3년을 넘게 예수님을 따라다니고 함께 지낸 후에 예수님께 요청드렸던 것이 바로 ‘우리의 믿음을 더하소서’ 또는 ‘우리의 믿음을 증대시켜 주세요’라는 요청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행하셨던 많은 기적들, 죽은 자를 살리고, 앉은뱅이를 일으키시고, 태어나면서부터 장님이었던 사람의 눈을 고쳐주시고, 수 천명의 사람들을 빵 5개와 물고기 2마리로 먹이셨던 여러가지 기적들을 바로 옆에서 체험하고 살펴보고 함께 그 현장에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믿음이 적은 자들이었습니다. 그들 스스로도 너무 답답했었는지 마침내 예수님께 이렇게 요청하였던 것입니다. 아마 이렇게 요청했을 것입니다: 제발 믿음을 자라게 해주세요!!!!!!
우리 주님께서도 때때로 제자들에게 ‘믿음이 적은 자들아’ 하고 책망하셨으니 그들이 이렇게 요청할 때에 예수님께서 그 정도면 됐다 말씀하시지 아니하시고 해결책을 제시해 주셨습니다. 그런데 그 대답을 가만히 살펴 보면 좀 어리둥절하게 됩니다. 일반적으로 그런 요청을 받으면 ‘자 내가 가르쳐 줄테니 잘 따라 해봐라’ 하시면서 ‘첫번째 이렇게 하고, 두번째 이렇게 하고…’ 등 어떤 구체적이고 절차적인 해법, 그래서 제자들이 쉽게 따라해서 믿음이 금방 커질 수 있는 방법을 말씀해주시기를 기대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해법은 그런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바로 이 부분을 주의깊게 살펴보고 우리도 어떻게 해야 믿음이 자랄 수 있는지 배워야 합니다.
예수님의 대답은 “너희에게 겨자씨 한 알만한 믿음이 있었더라면 이 뽕나무더러 뿌리가 뽑혀 바다에 심기어라 하였을 것이요 그것이 너희에게 순종하였으리라”고 하셨습니다. 만약에 지금 이 세상에서 어떤 크리스찬이 말로 명해서 나무 하나를 뿌리째 뽑아올려서 멀리 바다에 심어놓았다면 모든 사람들이 그 사람은 엄청난 믿음의 사람이라고 침이 마르도록 칭찬할 것입니다. 그리고는 전 세계적으로 순식간에 가장 유명한 사람으로 알려졌을 것입니다. 그런데 본문을 가만히 살펴 보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엄청난 믿음의 사람이어야 가능할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을 예수님은 겨자씨 한 알만한 믿음만 있더라도 할 수 있는 일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여러분 모두 잘 아시다시피 겨자씨는 그 당시 이스라엘에서 가장 작은 씨앗이었습니다. 대강 크기가 1mm 정도의 작은 씨앗입니다. 그 작은 겨자씨 한 알만한 믿음으로도 그렇게 엄청난 일을 할 수가 있는 것이라고 가르쳐 주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이렇게 대답해 주신 의미를 4가지로 나누어서 생각해 보겠습니다.
첫째는 믿음에 대한 개념 자체가, 패러다임이 바뀌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 당시의 사도들이나 오늘날 우리들은 믿음에 대해서 생각할 때에 흔히 내가 뭔가 이루어야 하는 것으로 생각합니다. 사도들도 그렇게 하다가 도저히 안 되니까 예수님께 요청했던 것입니다. 믿음을 뭔가 관념적이고 추상적이고 뜬구름 잡는 것처럼 생각하는 분들도 계시겠지만 또 한편으로는 믿음을 내가 수고하고 노력해서 이루어내야 하는 어떤 것으로 생각하시는 분들도 많으실 것입니다. 그런데 이게 잘 안 되니까 어렵게 느끼는 것이지요. 예수님은 이러한 생각 둘 다 아니기에 믿음에 대한 패러다임이 바뀌어야 한다고 가르쳐 주시는 것입니다. 믿음 자체에 어떤 능력이 있고 힘이 있어서 내가 믿음을 소유하고 가져야 하는 어떤 것이라는 생각을 바꿔서, 믿음은 우리 각자와 믿음의 대상이신 하나님 사이의 신뢰 관계라는 것을 이해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누구와 관계를 맺고 이어가고 깊게 할 수는 있지만 관계를 소유할 수는 없습니다. 관계는 소유되는 것이 아니고 함께 만들어 가는 것입니다. 제자들은 믿음을 소유하고자 했습니다. 그것도 크고 좋은 믿음을 소유하고자 했습니다. 그래서 매번 실패했던 것입니다. 믿음은 내가 소유하거나 이루어내는 어떤 것 또는 관념적인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 나와의 신뢰 관계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받을 자격이 전혀 없는 우리에게 은혜로 선물로 맺어주시는 사랑의 관계가 믿음입니다.
둘째는 믿음의 크기가 문제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믿음 자체에 어떤 능력이 있어서 믿음의 내용대로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믿음 자체에 능력이 있다면 큰 믿음으로는 큰 일을 하고 작은 믿음으로는 작은 일만 할 수밖에 없겠지요. 그러나 믿음 자체에 능력이 있는 것이 아니라 믿음의 대상이신 하나님이 능력 있는 분이시기 때문에 믿음의 크기와는 다르게 믿음의 결과는 얼마든지 나타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겨자씨 한 알만한 믿음으로도 이렇게 큰 일을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물론 이렇게 큰 일을 행하신 하나님을 보면서 우리는 더욱 큰 믿음으로 성장해 갈 수 있겠지요. 그러나 큰 믿음을 갖고 있기에 큰 일을 행하게 되는 것은 아닙니다. 믿음의 크기가 문제가 아니라 믿음의 크기 보다는 구하는대로 실천을 하느냐 마느냐에 따라서 다시 말씀드리면 구하는 내용을 내 삶의 현실에 현장에 적용을 하느냐 안 하느냐에 달렸다는 것입니다. 아무리 맛있게 보이고 신선한 사과가 옆에 있다고 하더라도 내가 먹지 않으면 내게는 아무런 영양분을 줄 수가 없습니다. 우리가 아무리 하나님 아버지를 믿고 또 주님을 사랑한다고 고백하며 때로는 눈물도 흘리고 때로는 찬송부르며 소리높이 외친다고 할지라도 하나님 말씀 안에서 구하는대로 내 삶에 적용하여 실천하지 않으면 아무런 소용이 없습니다. 믿음의 크기가 아니라 믿음의 행함입니다. 믿음의 꽃은 행함입니다. 꽃이 피지 않으면 열매가 맺히지 않듯이 행함이 없으면 절대로 열매를 맺을 수 없습니다.
셋째는 믿음의 대상이 일하신다는 것입니다. 앞에서도 잠깐 말씀드렸지만 우리의 능력이나 믿음 자체나 그 무엇이 결과를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인도하심대로 구하는 믿음은 믿음의 대상이신 하나님께서 반드시 이루시겠다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15장 포도나무 비유 말씀을 보시면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7절입니다.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 주님께서 포도나무와 가지를 비유로 해서 주님과 우리의 관계를 설명해 주시면서 가지가 나무에 붙어있기만 하면 당연히 열매를 맺게 된다고 설명해 주시고나서 이렇게 7절 말씀을 주셨습니다. 그러면 가지가 나무에 붙어있기만 하면 즉 우리가 예수님 믿기만 하고 하나님께서 주시는 은혜를 받기만 하면 우리는 아무것도 안 하고 가만히 있어도 자동적으로 열매를 맺게 되는 것일까요? 물론 한 측면은 그렇습니다. 그런데 나머지 한 측면이 있다는 말씀입니다. 우리가 예수님 안에서 구하면, 즉 하나님께서 이루어주실 것을 믿고 구하면 하나님께서 일하셔서 이루시겠다는 말씀을 하셨던 것입니다. 가지가 나무에 붙어 성장하려면 부지런히 양분을 나무로부터 흡수하고 농부가 수고하는대로 잘 양육받아야 하지만 또 한편으로는 그 관계를 토대로 해서 구하여 아버지가 이루어주는 관계, 양방향의 관계로 나아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16절에 보시면 “내 이름으로 아버지께 무엇을 구하든지 다 받게 하려 함이라”고 가르쳐 주셨습니다. 아버지께서 이루어 주시겠다는 것이지요. 우리가 구하는 이유는 우리 능력으로 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할 수 없는 그것을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은혜로 이루어주시는 것을 보면서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 성장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살아계시고 역사하시는 분이시고 나를 사랑하셔서 내가 구하는 대로 이렇게 이루어주시는 분이시구나 하면서 내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 아버지와의 관계가 더욱 깊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믿음 자체가 아니라 믿음의 대상이신 하나님, 살아계신 하나님이 일하셔서 이루어주신다는 것을 명심해야 합니다.
우리가 말로만 구하고 내 삶 속에서는 잊어버리고 사는 것이 아니라 구하는 대로 내 삶 속에 적용해 봐야만 우리는 하나님께서 살아계시고 역사하시는지 알 수 있습니다. 우리가 잘 아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어느 지방에 꽤 오랫동안 비가 내리지 않아 가뭄이 심하였습니다. 그러던 어느 아침 한 목사가 가족들과 함께 하나님께서 비를 주시도록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그리고나서 일하러 나가는데 그냥 나가자 어린 아들이 그 아빠 목사님을 불러서 말하기를 우리가 이렇게 하나님께 기도했으니 조금 있으면 비가 올 것인데 우산을 가져가야 하지 않겠냐고 하였답니다. 그 목사님은 아들의 말에 충격을 받아서 자신의 믿음을 되돌아 보게 되었다는 이야기이지요. 그는 기도를 삶의 현실에 적용하지 않고 말로만 구하고는 정작 삶에서는 자기의 기도를 무시하고 살았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역사하실 때에는 하나님의 영광이 드러나야 하는데 이렇게 사는 사람의 믿음으로는 어떻게 하나님께서 영광받으실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께서 역사하실까요?
물론 그 목사님이 비가 올 것이라고 굳게 믿고 우산을 가져갔다고 할지라도 하나님께서 그날 비를 내려주시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 목사님과 가족들은 최소한 한가지는 하나님으로부터 배웠습니다. 하나님과 교제를 나눈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구하는 과정을 중요하게 생각하신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들은 비가 내리는 데에는 하나님이 정하신 때가 있다는 것을 배웠을 것입니다. 그래서 처음에는 단순히 비가 내리게 해주시기를 바라는 기도가 나중엔 하나님의 뜻을 살피는 기도로 변화되고 하나님의 뜻 가운데 비가 내리는 날을 소망 가운데 기다리며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으로 변화될 것입니다. 이것이 믿음 성장의 비결입니다.
마지막으로는 믿음의 대상이신 하나님의 능력 앞에서 겸손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구한대로 받았다고 해서 마치 내가 무슨 능력이 있는 사람처럼 또는 내 믿음에 무슨 특별함이 있는 것처럼 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누가복음 17장 7절부터 10절까지 예수님께서 계속 이어서 가르쳐 주신 말씀이 바로 이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났을 때에는 하나님을 찬송해야 합니다. 내가 순종해서 열매를 맺고 하나님의 영광이 드러났을 때에는 하나님을 찬양해야 합니다. 내가 순종했기 때문에 하나님의 영광이 드러나게 되었다는 어리석은 생각, 내 순종이 아니었다면 하고 나의 순종을 높이는 생각을 버려야 합니다. 나는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나는 도구로 쓰여졌다는 것만으로도 감사드리며 모든 감사와 영광 오직 하나님께 드려야 합니다. 그래야 그 다음 단계로 계속해서 성장할 수 있습니다. 기독교 역사를 돌아보면 여기에서 실패하여 처음엔 크게 쓰임 받다가 마지막엔 비참하게 끝난 사람도 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믿음의 열매를 맺은 후엔 반드시 겸손해야 다음 단계로 더욱 성장할 수 있다는 것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결론적으로 요약하면, 우리 모두는 다 공통된 한가지 소망을 가지고 있을 것입니다. 나의 믿음이 자라서 나도 다윗처럼 아브라함처럼 사도 바울처럼 베드로처럼 하나님을 신실하게 섬기고 사랑하고 싶다는 소망일 것입니다. 매일매일 믿음이 성장하여 하나님께 쓰임받고 싶다는 소망일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믿음이 자랐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가지고 계실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 있다고 고백하지만 정작 우리 삶에 간섭하시고 역사하시는 하나님, 믿음으로 구했더니 이루어주시는 하나님을 한번도 뵌 적이 없다면 참으로 불행한 삶을 살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 주님이 가르쳐 주신 해법은 바로 이것입니다. 지금 우리가 가지고 있는 믿음의 크기에 연연해 하지 말고, 믿고 구하는대로 우리 삶의 현실에서 현장에서 적용해 보는 것이 가장 확실한 해법이라는 것입니다. 믿음 자체에 어떤 능력이 있는 것도 아니며 큰 일을 하는 신자의 믿음에 뭔가 특별함이 있는 것도 아닙니다. 우리 믿음의 대상이신 하나님께서 일하시기 때문에 우리는 믿음을 통해서 큰 일을 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또 체험적으로 만나야 우리 믿음이 성장할 수 있습니다. 어린아이와 같이 받아들이지 않으면 결코 하나님과 동행할 수 없습니다.
이제부터는 믿음의 크기에 대해서 고민하지 말고 실제 삶의 현실에서 현장에서 실천적인 발걸음을 내밀어야 합니다. 처음엔 망설여지고 안 되면 어떡하지 여러 고민이 생길 수 있지만 그 모든 것조차 다 하나님께 맡기고 실제로 믿음대로 구하는대로 삶에 적용해 보시기 바랍니다. 믿음의 꽃은 행함입니다. 행함이 있어야 열매를 맺습니다. 우리의 믿음의 주님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루실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이루시는 것을 통해서 우리의 믿음은 성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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