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sted by 풀숨 2020. 10. 17. 21:35

황무지 2



이재이



네 머리 위의 하늘은 지겹도록 푸르고

네 배는 소의 가죽을 뚫고 피를 빠는 파리처럼 붉디 붉다

너를 스쳐간 마른 뼈들은 심장을 비켜서

다 자라지 못한 강아지풀처럼 여기저기 박혀 있다


어릴 적 세웠던 전망대는 녹슬어 사다리마저 끊어졌고

지평선은 감옥처럼 선을 그어놓았다


넌 언젠가 한동안 바닥에서 지냈는데

네가 걷지 않음으로 인해 바닥은 사방에 창을 내었고

너는 언제나 창틀에 매달려 있었을 뿐


그러고 보니 네가 가끔 하늘을 보긴 했다

샛별이 가장 밝게 빛날 무렵이면 손을 뻗었다

환희와 소유욕을 혼동하며

두려움을 알지 못한 채

두려움은 비명과 함께 오지 않는다는 것을 알지 못한 채


그가 옳았다

4월은 시리게 잔인한 달*

너는 이른 비 내려도 붉게 토하기만 하는

파도 파도 인큐베이터를 발견할 수 없는 땅

오늘을 내일에 팔고 또 오늘이면 내일에 파는 벗은꽃




*엘리엇의 시 “황무지”에서 따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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