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sted by 풀숨 2020. 10. 9. 23:56

황무지



이재이



너는 있는 듯 없다

처음부터 없지는 않았으나

어느 순간 무너져 평면이 되었다 그리고

씨앗 없는 4월과 무시되는 10월의 반복


너는 질문하지 않는다

입술 마른 채

햇빛 아래 오래 전

너의 방으로 들어가 나오지 않았다


봄은 움직이는 것마다

바람에 킁킁대며 뒤쫓는 당나귀 콧김을

네 앞에 불고 있음에도

너는 시간을 낳지 못하는 불임의 몸


사탕을 잃어버리고도 불평하지 않는 아이처럼

신발을 끌며 돌아서서

그나마 남아있던

목소리에 마스크를 씌우고


색을 삼켜버린 그림자의 몸부림처럼

비움에 빠져든다

비움은 채움의 소울메이트

서로를 향한 끈적한 의지를 잊고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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