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8. 2. 09:24
비탈길에서
이재이
거울을 피하려 땅만 보고 걷습니다
마주치는 눈이 조심스러워 바닥만 보고 걷습니다
바람에 침이 섞여 있는 시간
나무들이 쏟아져 내리는 시간
바닥을 향해 산처럼 걷습니다
걷다가 걷다가, 마치 세상이 투명하게 변한,
그림자 놓치는 순간이 오면
비로소 바닥에 도착한 것이겠지요
그림자도 비탈을 피해
산 뒤편으로 숨어든 것이겠지요
그대도 걷다 보니, 꿈쩍 않는 바닥에서,
흑백 필름처럼
입김 조각 조각, 발끝에 담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