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sted by 풀숨 2020. 8. 2. 09:28

레몬 먹는 밤



이재



시를 읽는다

나를 읽는다

늘어진 어깨 씻어주려 레몬을 먹는 것처럼


한 알 깨물지 않고 과즙 터트리지 않고

통째로 꿀꺽 삼켜도 되고

잘근잘근 씹어서 알갱이 하나 둘 혀로 굴리며

부르르 떠는 몸으로 먹기도 한다

어떻게 먹든 목구멍은 얼얼하고 배는 꿈틀대지만

맛을 이야기할 수 있는 방법은 한가지뿐

나를 부수고 씹고 벌거벗겨

나의 맛을 안다는 것은 세상 사는 맛을 안다는 것

레몬이 쓰다는 사람, 시다는 사람, 눈물 나게

달다는 사람

시를 읽는다

너를 기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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