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의 목적
우리의 전통적 또는 동양적 사고방식은 때때로 기독교를 오해하게 만든다. 대표적인 예가 바로 구원에 대한 오해가 아닐까 싶다. 왜냐하면 많은 크리스찬들이 구원에 대해 이해하기를, 구원은 나중에 죽어서 천국에 가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것은 기독교의 핵심인 복음을 오해하기 때문에 나타나는 현상이다. 성경이 가르치는 구원은 그런 것이 아니다. (먼저 복음의 기초에 대해서는 이 글을 참조하기 바랍니다: https://comfortye.tistory.com/39?category=799636 )
일반적으로 모든 사람은 이 세상에서는 현재 주어진 상황에서 잘 먹고 건강하게 잘 살다가 나중에 죽어서 좋은 곳으로 가는 것이 최선의 삶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러한 생각에다 복음을 듣고 나서는 자신만의 결론을 내린다. 즉, 복음을 듣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서 구원을 받았으니 나중에 죽어서 천국에 가는 것은 따 놓은 당상이며 이제 이 땅에서는 잘 먹고 잘 살면서 구원받은 것을 잃어버리지만 않으면 된다는 결론을 갖게 되었다. 그러면서 구원받은 것을 잃어버리지 않았다는 증거로서 교회에 출석하며 헌금하는 것으로 대신하게 된 것이다. 마치 건강보험을 유지하려면 매달 얼마씩 납부해야 되는 것과 비슷하게 생각하는 것이다. 물론 구원을 돈으로 산다고 생각하는 것은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교회에 출석하는 것이다. 교회에 출석해서 예를 갖춰서 기도도 드리고 의식을 행함으로써 하나님께 대한 공경심을 보이고 더불어 헌금도 함으로써 구원받음을 유지한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이 생각이 잘못된 것이라면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일까? 복음은 과연 그러한 것이며 복음의 목적은 무엇일까? 이 생각이 잘못된 것은 명백하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은 복음에 대해서 전혀 다르게 가르치고 있기 때문이다. 신약성경에 복음이란 단어를 포함하는 구절은 모두 113 구절이 있다. 그냥 복음이란 단어만 사용된 경우가 약 85번 정도 있고, 복음을 수식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 하나님의 복음, 하나님 나라의 복음 등이 28 번 정도 있다. 성경에 기록된 복음에 대한 설명들을 종합적으로 이해하면, 복음은 죄인으로서 아무런 소망이 없는 사람이 하나님의 은혜로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성령님을 통해서 받는 구원에 대해서 가르치며, 그 구원은 사람이 나중에 죽어서 천국에 가는 것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구원을 미래적인 것으로만 가르치지 않고 현재적인 것으로도 가르치고 있다.
먼저 복음의 궁극적인 목적에 대해서 성경은 무엇을 가르치는지 살펴 보면 에베소서 1장을 보아야 한다. 3절부터 14절까지 ESV를 번역한 것이다.
“찬송하리로다 하나님이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그분은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의 처소들에 있는 모든 영적인 복으로 우리를 축복하셨으니, 세상의 기초가 놓이기 전에 그분의 안에서 우리를 선택하신 것은 우리가 그분의 앞에 거룩하고 흠없게 하시려는 것이라. 사랑 안에서 그분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우리를 아들들로서 자신에게 입양되도록 예정하셨는데 그분의 뜻의 목적에 따라 그분의 영광스러운 은혜의 찬양을 하게 하시려고 그 사랑받는 분 안에서 그 은혜로 우리를 축복하셨다. 그분 안에서 그분의 피를 통하여 우리가 구속받으니 곧 우리의 죄들의 용서이며, 그분의 은혜의 풍성함을 따라서 받았으니 그분이 그 은혜를 우리에게 퍼부어 주셨으며, 그분의 뜻의 신비를 우리에게 알게 하는 모든 지혜와 통찰 안에서 주셨고, 그분이 그리스도 안에서 시간의 충만함을 위한 계획으로서 세우신 목적에 따라서 모든 것들, 곧 하늘에 있는 것들과 땅에 있는 것들이 그분 안에서 통합되도록 하심이라. 그분 안에서 우리가 기업을 얻었으니, 그분의 뜻의 협의에 따라서 모든 것들에 역사하시는 그분의 목적에 따라 예정된 채로, 그리스도 안에서 소망하는 첫번째 사람들인 우리가 그분의 영광을 찬양하게 하려 함이니라. 그분 안에서 너희 역시 약속된 성령님으로 봉인되었으니, 너희가 진리의 말씀, 곧 너희 구원의 복음을 듣고 또한 그분을 믿었을 때였고, 성령님은 우리가 그것을 소유할 때까지 우리 기업의 보증이 되시고 그분의 영광을 찬양하게 하려 함이니라” (엡 1:3~14; ESV 번역).
이 말씀을 자세히 살펴보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신 세 가지 목적, 즉 복음의 목적이 기록되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첫째는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은혜를 찬양하게 하려 함이요, 둘째는 모든 것들이 예수 그리스도 우리 주님 안에서 통합/통일되게 하려 함이요, 마지막으로는 성령님에 의해 우리가 하나님의 영광을 찬양하게 하려 함이다. 이 세 가지 목적을 한 단어로 축약해서 표현하면 바로 하나님의 나라(Kingdom of God)이다. 예수님은 바로 이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기 위하여 오신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이 공생애를 시작하시면서 맨처음 선포했던 말씀이 바로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다”는 것이었다. 따라서 지금 현재 하나님의 나라는 이미 임하였고 장차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 시에 완성될 것이다. 이렇게 구원은 현재성과 미래성을 동시에 가지고 있다. 우리는 이미 구원을 받았고 하나님 나라에 살고 있지만 또한 장차 완성될 구원, 즉 극치로 임할 하나님의 나라를 바라며 사는 것이다.
하나님의 나라는 어느 특정한 장소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하나님의 통치, 곧 하나님의 직접적인 다스리심을 의미한다. 따라서 그 나라는 의와 사랑의 통치요 생명과 기쁨의 통치요 화평과 평안의 통치이다. 이제 구원을 받았다는 것은 죄와 사망의 통치에서 의와 사랑과 생명과 기쁨이 넘치는 하나님의 나라로 옯겨졌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다만 우리 주님이 재림하실 때까지는 우리는 아직 죄성이 남아있는 육신을 가지고 하나님의 나라에서 살아야 하기에 하나님의 나라를 맛보는 수준에 그칠 수밖에 없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맛보는 수준만으로도 우리는 우리가 하나님의 나라로 옮겨졌다는 것을 확실히 알 수 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말씀이 증언한 바와 같이, 우리는 영과 혼과 육을 통해서 하나님의 다스리심을 느끼고 경험하며 이미 그 안에서 살고 있기 때문이다 (마 3:2; 막 1:15; 요 1:12; 5:24; 마 12:28; 롬 8:16; 14:17; 엡 2:1~7; 골 1:13; 약 2:5; 벧전 1:15).
그러므로 우리의 삶은 죄의 도구로부터 벗어나 하나님의 다스리심 가운데 의와 빛의 도구가 되어 하나님께 영광드리는 것이 되어야 한다. 비록 때로는 실수도 하고 실패도 경험하며 엉망진창인 것처럼 느껴지기도 하지만 하나님의 큰 은혜로 말미암아 우리 주님 안에서 성령님으로 말미암아 조금씩 성장하며 하나님의 영광을 찬양하는 도구로 사는 삶을 누리게 된다.
따라서 우리는 개념을 명확히 해야 한다. 우리의 몸이 죽은 후에 가게 되는 천국과 이미 임한 하나님의 나라는 서로 다른 것이다. 비록 한글 개역본 성경이나 개역개정본 성경의 마태복음에는 “하늘의 나라”를 한자어로 천국이라고 번역하여 불필요한 오해를 불러왔지만 마태복음은 하나님이란 단어 대신에 하늘이란 단어를 사용하여 하나님이란 단어조차 함부로 사용하지 않으려 했던 것이었다.
이제 종합적으로 다시 생각해 보자. 복음의 목적은 무엇인가? 복음의 목적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만물이 하나로 통합되도록 하기 위해서 우리의 삶뿐만 아니라 온 세상을 근원적으로 변화시키는 것이다. 죄와 사망과 슬픔과 눈물의 지배에서 의와 사랑과 생명과 기쁨과 평안의 지배로 옮겨지는 것이다. 이 새로운 지배의 삶은 하나님의 통치로 인함이요 이는 하나님의 나라인 것이다. 그래서 복음의 시작은 하나님 아버지시요, 복음의 중심은 예수 그리스도이시며, 복음의 역사는 성령님의 역사이다. 그러므로 복음이 선포되고 복음을 받아들인 모든 곳에서는 이제 하나님의 나라가 시작되었다. 죄와 사망에 지배되어 억눌려 신음하는 것이 아니라 의와 사랑과 생명 안에서 기쁨의 찬양이 흘러 나오는 것이다. 우리가 복음을 받아들여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했다면 우리의 삶은 이미 근본적으로 변화된 것이다. 죄에 얽매어 집착하고 욕망했던 세상은 더 이상 우리를 주관하지 못하고 오히려 무시당하며, 이제는 공의와 사랑과 나눔과 섬김을 향하여 우리의 눈이 고정되었고 어찌하든지 그런 것을 붙잡으려고 애쓰는 삶으로 바뀐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 스스로에게 질문해 보자. 우리는 크리스찬으로서 하나님의 나라의 삶을 살며 누리고 있는가? 나중에 몸이 죽은 후에 가는 천국이 아니라 지금 현재 이 땅에 임한 하나님의 나라에서 살고 있는가? 하고 질문해 보고 스스로 답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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