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모이는 기쁨
지난 해부터 시작된 코로나 팬데믹 상황이 계속되는 현재, 우리 대부분의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과 분리되고 고립되어 혼자서 또는 가정 단위로만 지내는 것에 점차 익숙해지고 있다. 그러나 그러한 고립에 익숙해지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예전처럼 함께 모일 수 있는 기쁨이 얼마나 큰 것이었나 하는 생각들을 갖게 되기도 한다. 히브리서 기자가 서로 모이기를 힘쓰자(히10:25)고 했던 것처럼, 특별히 우리 크리스찬은 성도들의 모임이 갖는 의미를 다시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성경에 의하면,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모이는 성도의 모임이 곧 교회이다 (고전 1:2~3). 그리고 이 교회는 하나님의 은혜로 인해서 예수님이 자신의 피값으로 사신 것이며 모든 성도는 집합적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몸으로 연합된 상태로 성령님으로 말미암아 모이는 것이다. 그러므로 교회는 모여야 한다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말이다. 그런데 지금 현재는 상황이 엄중한 만큼 어떻게 지혜롭게 모일 것인지 고민할 필요가 있다. 언택트 시대를 살면서도 성도의 모임을 계속 유지할 수 있는 지혜가 필요한 것이다. 하나님이 보호해 주실 것이므로 그냥 무조건 모여도 된다고 주장하는 일부 목사들의 주장은 성경을 오히려 잘 몰라서 하는 말이다. 하나님의 보호하심은 하나님의 성품과 하나님의 계획과 하나님의 역사에 합당해야 이루어지는 것이지 그냥 무턱대고 무조건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하나님의 이름을 앞세운다고 무조건 되는 것이라고 한다면, 구약 시대에 하나님의 이름을 앞세우고 – 심지어 하나님의 법궤를 앞세우고 진군했던 전쟁에서 무참히 패배했던 이스라엘에게서 아무런 교훈도 배우지 못한 것이다. 따라서 코로나 팬데믹이 종료될 때까지는 하나님의 능력 안에서 지혜롭게 모여야 한다.
하나님 아버지의 은혜로 인해서 성령님으로 말미암아 예수 그리스도가 세우신 교회이기에 교회의 본질은 영과 진리로 성삼위일체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것이다. 다만 예배란 형식화된 주일예배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이름으로 모여서 하나님께 영광드리는 모든 활동들, 곧 성경공부도 예배이며 성도들이 함께 이웃을 섬기는 것도 예배이다 (롬 12:1). 그래서 예배는 개인적으로 드리거나 또는 집합적으로 성도들이 모여서 드릴 수 있으며, 성도의 삶의 중심에는 개인적이든 공동체적이든 반드시 예배가 있어야 한다.
개인적으로 혼자 드리는 예배와 집합적으로 드리는 예배 – 집합의 크기가 크던 작던 간에 두 사람 이상이 모여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성령님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영광드리는 활동은 모든 구성원들에게 넘치는 기쁨을 준다. 집합적으로 드리는 예배가 더욱 기쁜 이유는 그 기쁨을 모든 구성원들이 함께 나눌 수 있기 때문이고 그 나눔으로 인해서 서로의 기쁨이 더욱 커지기 때문이다. 심지어 어느 모임에 좀 비판적인 시각으로 건건이 반대만 하고 핑계만 대는 사람이 참석했다고 하더라도 그가 함께 모였다는 사실만으로도 기쁜 것이다. 코로나 팬데믹 이전에는 그런 사람의 참석을 탐탁치 않게 여겼고 모임을 해치는 사람이는 생각만을 가졌으나 팬데믹 상황을 지나면서 드는 생각은 그런 사람의 참석조차도 귀한 것이었다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함께 모일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참으로 즐겁고 기쁜 일이었다는 것을 새삼 느끼게 된다. 물론 그런 사람이 모임을 해치게 방관해도 된다는 의미가 아니라, 그런 사람까지도 포용할 여유와 지혜를 가져서 그도 기쁨을 함께 나눌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의미이다.
사실 나 한 사람이 모임에 참석한다는 것이 뭐가 대수인가 싶은 생각이 들기도 하고, 오늘 한 번은 몸도 피곤하고 다 귀찮아서 모임에 빠져야겠다는 생각을 하기도 한다. 그런데 별로 대수롭지 않은 것 같은 나 한 사람이 모임에 참석했다는 것 하나만으로 모든 구성원들이 기쁨을 누린다는 것을 나는 알지 못한다. 모임에 들어가서 하는 첫 인사들 – 아, 오셨어요 또는 잘 오셨네요 또는 잘 지내셨지요 또는 어떻게 지내셨어요 등등의 인사조차 기쁨을 전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지 못한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의 모임은 모였다는 것 자체로 기쁜 것이었다. 한 사람의 선한 영향력은 이처럼 그냥 별 거 아닌 것 같은 모임에 참석하는 것만으로도 가능해진다. 왜냐하면 모든 성도는 그리스도와 연합되어 있기 때문이다. 성령님이 그 자리에서 역사하시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히브리서 기자가 권면하는 것처럼, 우리는 기회가 되는 대로 모이기를 힘써야 한다 (물론 모든 모임에 다 참석해야 한다는 의미는 아니다. 가급적 많은 모임에 참석하면 좋겠지만 결국 성령님의 인도하심에 따라서 이루어져야 한다). 나 한 사람의 참석이 모두를 기쁘게 하며 모두가 모두에게 성령님의 역사하심이 증거되는 귀한 시간이 된다는 것에서 모임에 참석할 동력을 얻어야 한다. 지금은 비록 언택트이 방식으로 온라인을 통해서 모이는 것이라 할지라도 모인다는 것 자체가 성령님의 역사임을 깨닫고 서로 모이기를 힘써야 한다.
우리 모두는 그리스도 안에서 ‘자세히 보지 않아도 예쁜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모임으로 향하는 발걸음조차 예쁜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몸의 지체들이 서로 마주쳐 아름다운 울림의 소리를 만들어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아름다움과 예쁨을 서로 나누어 서로의 기쁨이 되고 즐거움이 되어서 서로가 서로를 세워주고 사랑하는 역사가 일어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어떤 모임이든 함께 모이기만이라도 하자. 온라인의 방식으로라도 모이기만이라도 하자. 함께 모여 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우리가 우리에게 기쁨이 된다는 것을 우리는 이제는 다 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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