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sted by 풀숨 2021. 3. 7. 11:17

무명(無名)으로 사는 삶

 

세상은 가치로 대상을 판단하며 가치를 평가하기 위한 체계가 반드시 언제 어디에서나 존재한다. 그리고 가치에는 여러가지 종류가 있다. 윤리적 도덕적 가치뿐만 아니라 실용적 가치, 경제적 가치, 물질적 가치, 건강을 위한 육체적 가치, 또는 쾌락적 가치 등등 많은 종류의 가치가 있다. 또한  객관적인 가치 기준과 평가 체계에 따라서 가치가 정해질 수도 있지만 지극히 주관적으로 가치가 정해지기도 한다. 따라서 심지어 객관적 혹은 역사적 진실과 진리조차도 그 진실을 대하는 공동체에게 주는 가치가 무엇인가에 따라 진실은 취해질 수도 있고 버려질 수도 있다. 역사적 진실을 철저히 왜곡하고 부정하려는 일본 우익의 행보를 보면 쉽게 알 수 있다.

 

모든 사람은 태어나서 뭔가를 인식하기 시작한 이후부터자신의 가치를 증명하도록 계속해서 교육을 받는다. 학교에 들어가서는 더욱 심해지고 성인이 되어 사회 생활을 할 때에는 마치 자신의 가치를 증명하는 게 전부일 정도가 되며, 이로 인해 심하게 스트레스를 받기도 한다. 때로는 가정도 가치 평가로부터 벗어난 공간이 될 수 없다. 돈을 벌어오지 못하는 아버지는 아버지로서의 자격을 상실한 것이 되고 이제는 아버지가 아니라 그저 ‘함께 사는 사람’일 뿐이다. 이제는 아버지라는 존재도 가치 평가의 대상이 되며, 그의 가치는 돈을 얼마나 벌어오는지에 따라서 거의 결정되는 시대가 되었다.

 

대부분의 경우에 대상에 대한 가치 평가는 공동체가 수행한다. 공동체의 대표가 독단적으로 수행하기도 하지만 공동체 전부 또는 일부가 집합적으로 수행하기도 한다. 그래서 어느 공동체에서는 전혀 가치 없는 것으로 평가되는 사람이 다른 공동체에서는 아주 중요한 가치를 가진 것으로 평가되기도 한다. 그래서 사람은 자기를 중요한 가치로 평가해 주는 공동체로 이동하게 된다. 그리고 자신의 가치를 인정받고자 하는 욕망은 모든 사람의 마음에 내재되어 있어서 모든 사람은 공동체에서 인정받고자 노력한다.

 

가치를 인정받기 위한 가장 일반적인 방법은 경쟁에서 다른 사람을 이기는 것이다. 또는 어떤 졸업장이나 증명서 또는 수료증을 통해서든 추천서나 실적을 통해서든 어떤 방법으로든 다른 사람들보다 – 대부분 경쟁 상대보다 내가 더 가치가 있다는 것을 증명하는 문서를 제공하면 된다. 경쟁에서 이기고 군림함으로써 가치를 증명하는 것이고 반대로 경쟁에서 지면 결국 버려진다. 이도저도 아니면 평생 동안 불안해 하면서 ‘줄’이라도 잘 타서 살아남으려고 하는 게 전부이다. 폭넓은 인맥도 가치로 인정된다. 이러한 것들이 세상이 세상을 평가하는 방식이다.

 

그러나 역사상 오직 한 사람만이 이러한 가치 평가 체계를 완전히 무너뜨리고 세상적으로는 전적으로 무명으로 살았다. 그는 무한대의 가치를 지녔으면서도 철저히 무명으로 살았으며, 이따금 보인 기적의 능력으로 인해서 사람들이 자기를 선생님으로 모시겠다고 구름처럼 모여들었어도 다 흩어버리고 결국 비참하게 죽임을 당했다. 그 능력을 세상에 드러내고 세상으로부터 가치를 인정받아서 세상을 뒤엎고 마음대로 통치하라는 권고와 유혹을 수없이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그냥 이름 없이 살았다. 만일 그가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지 않았다면 그는 역사 속에서 아무 기록도 남기지 않고 무명으로 사라졌을 것이다. 그는 죽은 사람을 살리기도 하였고 장님의 눈을 뜨게 하였으며 앉은뱅이로 수십 년 동안 살았던 사람을 걷게 하는 기적을 베풀었지만 성경 이외에 그의 이름을 발견할 수 있는 명백한 역사적 기록이 없다.

 

예수님의 형제들조차 예수님을 믿지 않았을 때에 그들이 예수님께 요구했던 것은 예수님이 세상에 드러나서 세상의 인정을 받아야 한다는 것이었다 (요7:2~9). 그러나 주님은 그들의 요청을 단호히 거절하시고 은밀히 행하시며 무명으로 죽으심으로써 역설적으로 세상을 꾸짖고 세상에 빛을 비추신 것이었다.

 

주님이 그렇게 철저히 무명으로 죽었으나, 바로 그 무명으로 죽었다는 사실 때문에 오히려 세상을 근본적으로 뒤엎을 수 있는 힘을 받게 된 것이다. 이제는 세상의 가치 평가 체계를 따르지 않고도 그 체계를 따르는 것보다 훨씬 더 진정으로 가치 있게 되는 또 다른 세상이 있다는 것을 사람들이 깨닫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것이 예수님의 부활로 인해서 증명되었기 때문에 우리는 그 길이 진리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주님으로 영접한 사람은 예수님이 살았던 방식으로 살아야 한다. 세상의 가치 기준과 평가 체계에서 살아남기 위해 노력하며 어떻게 하든지 조금이라도 더 세상으로부터 인정받기 위해 경쟁에서 무슨 방법을 써서라도 이기려 하는 것이 아니라, 진정 가치 있는 존재이지만 무명으로 살면서, 무명이기에 세상이 인정하는 가치로부터 벗어나 진정한 존재 가치를 깨닫고 진심으로 살 수 있는 삶을 살아야 하는 것이다.

 

세상에서 무명으로 살아야 한다는 말은 사람이 공부도 하지 않고 무능력하고 무기력한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이 결코 아니다. 세상의 가치 기준과 평가 체계를 따라서가 아니라 주님의 가치 기준과 평가 체계를 따라야 한다는 것이다. 세상의 가치 평가 체계를 따라서는 아무런 이름도 없고 그저 그런 사람으로 보이지만 그리스도 안에서 큰 능력과 지식과 지혜의 사람이어야 한다는 말이다. 그래서 크리스찬은 세상의 가치 평가 체계를 거부함으로써 세상에서는 비록 무명이지만 오히려 세상을 비추고 세상의 어두움을 드러내기 때문에 세상으로부터 배척을 당하고 거부를 당할지라도 주님 안에서 진정한 가치를 이루어내는 삶을 살게 된다.

 

따라서 우리 크리스찬은 깊이 생각해 봐야 한다. 우리가 육신을 입고 아직 세상에서 살고 있는 동안에 세상에 대하여 어떠한 삶을 살 것이며, 또한 교회 안에서 형제들을 대할 때에 혹시라도 세상적인 가치 평가 체계를 사용하여 형제들을 판단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그리고 교회의 일들을 결정할 때에 세상의 가치 기준과 평가 체계를 따라서 결정하는 것은 아닌지 깊이 생각해야 한다. 주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신 바, 아무든지 주님을 따르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를 것이니라(마 16:24)고 하신 말씀은 분명히 무명의 삶에 대한 의미를 포함하고 있다. 그러므로 우리 주님의 삶을 바라보면서 우리가 세상에서 무명으로 사는 삶이 얼마나 필요한 것이고 또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깨닫고 각 개인이 그리고 교회가 무명의 삶을 이루어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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