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팬데믹에서 배워야 한다
1900년대 초에 발생한 스페인 독감 이후로 백여 년 만에 수많은 사람들의 생명을 위협하는 엄청난 상황에 온 인류는 직면했다. 더욱이 이번 상황은 인류 역사상 노아의 홍수 다음에 처음으로 세상 모든 사람의 생명을 위협하는 것으로서 선진국이든 개발도상국이든 저개발국이든 상관하지 않고 무차별적으로 확산되었고, 또 지금도 확산되고 있다. 코로나19 바이러스로 인해서 세계적으로 벌써 수천만 명이 감염되었고 수십만 명이 사망하였으며 오늘도 새로운 감염자와 사망자가 나오는 상황이다.
이렇게 엄중한 상황을 이해하고자 기독교계에서 저명한 분들이 자신의 생각을 이미 책으로 출판하기도 했으며 또한 많은 목사님들 역시 자신들의 생각을 교회를 통해서나 인터넷을 통해서 나누고 있는데 (구글을 통해서 “코로나 기독교” 또는 “코로나 파이퍼 라이트”로 검색하면 다양한 글들을 찾을 수 있다), 이러한 글들이 때때로 서로 극단적인 대척점이 서 있는 경우를 발견하기도 한다. 이미 이렇게 많은 글들이 있지만 접근방향을 다르게 생각해 보고자 한다. 이 글은 이 상황의 원인이나 이유를 찾는 것 또는 어떻게 이겨낼까보다는, 하나님의 자녀로서 우리는 이 상황에서 무엇을 배울 수 있을까를 함께 고민해 보고자 하는 것이다.
모두 잘 알다시피, 중국 우한에서부터 본격적으로 사람들 사이에 전파되기 시작한 코로나19 바이러스는 중국보다는 오히려 선진국이라 불리는 서구권 국가들에서 엄청난 속도로 퍼져서 수천만명이 감염되었고 또 수많은 사람들이 사망하였다. 이탈리아, 스페인, 영국, 독일, 프랑스, 러시아 등 유럽과 미국이다. 이로 인해서 서구권 국가들의 경제는 엉망이 되었고 미국의 경우 2020년 2분기에 -32% 성장이라는 초유의 사태를 맞이하였다. 수천만 명의 사람들이 국가에서 지급하는 실업수당에 의지해서 하루하루를 살고 있으며 또 다른 수천만 명의 사람들은 언제 직장을 잃을지 몰라 노심초사하며 삶의 기반이 무너지고 있음을 두려워한다. 더욱이 이들 국가들과 호주, 캐나다, 및 남미 국가들 등은 소위 말하는 기독교 영향을 가장 많이 받은 나라들이며 전세계의 대부분의 기독교나 천주교 신자들이 이 국가들에서 거주한다. 그런데 이들 국가들에서 가장 많은 감염자와 사망자가 나온다. 8월 초 현재 미국이 압도적으로 1위이며, 세상에서 가장 큰 예수님 동상이 세워져 있는 브라질이 2위이다. 러시아가 3위이고 인구가 많은 인도가 그 뒤를 잇고 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사람들의 생명을 염려하는 미국 방송사들이나 바이러스 전문가들은 한국을 방역의 기준으로 삼아서 마스크를 반드시 착용하고 사회적 거리두기를 지켜서 바이러스 감염을 최소화해야 한다고 매일 매일 소리높여 외치고 있으나, 미국에서는 청년층을 중심으로 개인의 쾌락을 위해 별로 호응을 하지 않으며 또한 장년층에서도 개인의 자유를 지키기 위해 마스크를 쓰지 않겠다고 한다. 그러면서 하루에 새로운 감염자가 7만 명씩 증가하는 것을 그저 바라보고만 있다. 나만 아니면 상관없다는 식으로 하루하루를 각자의 방식대로 즐기며 산다.
실제로 어떤 분은 말하기를, 회사에서 마스크 쓰기를 의무화 한다면 회사를 그만두는 한이 있어도 절대로 마스크를 쓰지 않겠다고 하며 심지어 그러다가 죽으면 어떻게 할 거냐고 물어도 그냥 죽어도 된다고 하였다. 마스크를 쓰든 안 쓰든 그건 자기 개인의 자유인데 왜 그것을 회사에서 또는 정부에서 강제하냐고 한다. 그리고 청년들은 금요일 오후가 되면 삼삼오오 모여서 이번 주말에 어느 술집에 가서 술을 마시며 즐기고 놀지 서로 낄낄대며 이야기한다. 더 심한 경우는 주정부의 마스크 쓰기와 외출 자제령을 거부하며 수백명씩 총을 들고 모여 데모를 하기도 하며, 동양인이나 흑인 등 사회적 약자를 차별하며 대낮에 폭행을 가하기도 한다. 이렇게 사회가 불안해지자 총기류의 판매가 수십 퍼센트 증가했다는 뉴스가 나오며 이제는 백인 성인 남자뿐 아니라 여자들과 동양인들도 총을 사는 비율이 엄청 늘었다고 한다.
이러한 사회적 현상을 살펴보면, 서유럽과 미국을 중심으로 해서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자유라는 이름으로 포장된 이기주의와 쾌락주의’이다. 개인주의를 넘어서 개인이 마치 세상의 중심이 된 듯한 극단적인 이기주의를 보이고 있다. 그들은 상대방에 대한 배려보다는 자신의 이익과 쾌락이 가장 중요하며, 어느 누구도 그것을 침해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그들에게 있어서 자유란 내가 하고 싶은 대로 무엇이든 하는 것이다. 이처럼 자유라는 이름으로 포장된 사회에서는 자기 이익과 즐거움을 위해서 다른 사람을 희생시키는 것에 – 심지어 죽음에 이르도록 하여도 – 아무런 거리낌이 없다. 한 국가의 최고 지도자라는 대통령이 이런 자세를 노골적으로 보여주고 있는 실정이다. 우리가 배워야 할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여기에 있다. 기독교 문화가 가장 왕성한 곳에서 이러한 이기주의가 팽배하게 될 때까지 우리는 그동안 무엇을 하고 있었는가 하는 점이다.
이러한 이기주의는 결코 기독교 정신이 아니다. 왜냐하면 사도 베드로는 분명히 가르치기를, “너희는 자유가 있으나 그 자유로 악을 가리는 데 쓰지 말고 오직 하나님의 종과 같이 하라”(벧전 2:16) 하였고, 또한 사도 바울 또한 고린도전서에서 가르치기를, 자신은 고기를 먹을 자유가 있으나 다른 사람을 위해서 이 자유를 평생 동안 사용하지 않을 수도 있다고 하였고, 갈라디아서에서는 “형제들아 너희가 자유를 위하여 부르심을 입었으나 그러나 그 자유로 육체의 기회를 삼지 말고 오직 사랑으로 서로 종 노릇 하라 온 율법은 네 이웃 사랑하기를 네 자신 같이 하라 하신 한 말씀에서 이루어졌나니 만일 서로 물고 먹으면 피차 멸망할까 조심하라”(갈 5:13~15) 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스스로 기독교인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수천만 명이나 되는 미국에서 이러한 이기주의가 자유라는 이름으로 포장되어 자기 이익을 위해 다른 사람을 희생시키는 데 전혀 주저함 없는 정도가 되었다는 것에 왜 우리는 놀라지 않고 왜 우리는 반성하며 회개하지 않는가. 우리의 눈은 도대체 어디를 향해 있단 말인가.
또한 백신이 아직 완성되기도 전에 미국과 영국과 일본이 백신 13억회 분량을 싹쓸어 갔다는 뉴스가 들린다. 가난한 나라들은 백신을 구입할 수조차 없게 될 만큼 부자 나라들이 백신을 입도선매 하고 있는데 그게 미국과 영국이다. 상대적으로 힘이 없고 가난한 나라들은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다른 힘없는 나라들과 연합하여 공동으로 백신을 구입하고자 한다는 소식이 들리는 상황에서도 미국은 더 많은 백신을 미리 찜해놓고자 수십조 원을 지출하며 다방면으로 힘을 쓰고 있으며 이미 전체 미국인이 백신을 두번씩 맞을 수 있을 만큼을 구입했다고 한다. 성경책을 손에 들고 나와서 TV 앞에 서는 대통령과 신실한 기독교인이라는 부통령이 최고 지도자인 미국에서 다른 힘없는 나라를 위한 배려는 도대체 어디에 있으며 우리는 왜 우리 지도자들의 이러한 행위를 보면서 놀라지 않는가.
무엇보다도 이러한 엄중한 상황이 6개월 넘게 이어지고 있는데도 이 상황으로부터 진지한 배움을 얻기 위해 하나님 앞에 무릎꿇고 엎드리자는 운동이 우리 기독교계에서 전혀 일어나지 않는 이유는 또한 무엇인가. 그저 항상 하나님이 지켜주실 것이니 조금만 더 버티고 이겨내면 된다며 두려워하지 말라고 오직 평안만을 선포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유다 왕국이 멸망할 즈음에 예레미야가 평안이 아니라 멸망을 선포했다는 것을 우리는 기억하는가. 우리 기독교계의 덕망있는 분들이나 지도자들은 이 엄중한 사태를 허락하신 하나님의 뜻을 이미 다 알고 있기 때문에 평안만을 선포하는가. 인류 역사상 처음 겪는 상황에 대해서 지금까지는 너무도 당황스럽고 혼란스러워서 어쩔 줄 몰라 했더라도 이렇게 6개월이 넘도록 이어지며 점점 더 심해지고 있다면 이제라도 정신을 차리고 하나님 앞에 나아와 여쭙고 엎드려 귀 기울여 들어야 하지 않겠는가.
캘리포니아의 어느 유명한 목사님은 주정부의 교회 폐쇄 지침에 반발하여 벌써 몇 주째 주일마다 교회문을 열고 교회 안에서 예배를 드린다고 한다. 하나님께 예배 드리는 것은 참으로 귀한 일이며 하루도 중단할 수 없는 일이다. 그러나 교회 건물을 폐쇄하는 것과 교회를 폐쇄하는 것은 다르다. 교회 건물이야 폐쇄되고 허물어지고 심지어 다른 종교 시설로 팔릴 수도 있지만, 교회는 결코 폐쇄되지도 허물어질 수도 없다. 온 우주의 창조주이신 그리스도의 몸이기 때문이다. 교회 건물이 폐쇄되어도 교회는 모여서 예배드릴 수 있다. 교회의 모든 성도들이 이런 상황에서 오히려 안전하게 예배드릴 수 있다. 모두 다 같은 장소에 모여 서로 얼굴을 직접 마주하며 입을 모아 찬양드릴 수는 없다고 하더라도 성령님 안에서 영으로 모여 얼마든지 함께 예배드릴 수 있다. 하나님께서는 이번 상황을 통해서 성도들이 교회 건물로 나와서 의무적으로 드리는 예배가 아니라, 서로 함께 영으로 하나 되어 진정한 예배를 드리는 것의 중요성을 가르쳐주시려고 한다면, 우리는 무엇을 어떻게 배워야 하는가.
한국 교회의 실정도 이와 별반 다르지 않을 것이다. 미국보다는 훨씬 좋은 상황일지라도 여전히 모두 마스크를 쓰고 생활해야 하며 사회적 거리두기를 위해서 모임을 자제해야 하므로 예전처럼 얼굴을 마주보며 예배드릴 수 없는 실정은 미국 교회의 상황과 동일하다. 이는 아마도 전세계의 모든 지역 교회들이 동일하게 마주하고 있는 현실일 것이다.
그러므로 이제 우리는 이 상황을 통해서 무엇을 배워야만 할 것인가. 첫째, 우리는 먼저 진정한 자유를 배워야 한다. 세상 사회가 개인주의를 넘어서 자유라는 이름으로 포장된 이기주의와 이기적 쾌락주의로 빠져드는 동안 교회가 빛과 소금의 역할을 감당하지 못하고 오히려 교회조차 동화되었음을 깨닫고 회개하며 다시 주님 안에서의 자유를 누리는 법을 배워야 한다.
둘째, 우리가 주님 안에서 누리는 자유를 세상에 전하는 방법을 배워야 한다. 이웃을 사랑하는 자유를 배워야 하는 것이다. 교회 안으로만 향해 있는 시선을 밖으로 돌려서 이웃을 위로하고 보듬어주며 사랑하는 방법을 배워야 한다.
셋째, 지도자를 구별할 줄 아는 지혜를 배워야 한다. 4년전에 소위 바이블 벨트라고 불리는 미국 남부 지역들이 선택한 대통령이 지금은 어떠한 사람으로 드러났는지 생각해 보고 여기서 교훈을 얻어야 하며, 이제는 주님께 구하여 올바른 지도자를 구별할 줄 아는 지혜를 간구해야 한다.
넷째, 모든 성도들이 주님 안에서 영으로 함께 모여 예배드리는 기쁨을 배워야 한다. 아직은 어리고 연약한 성도들을 포함해서 교회 공동체의 모든 성도들이 다함께 주님 안에서 영으로 하나 되는 기쁨을 배워야 한다. 이 하나 됨이 없는 상황에서 지금 소외된 지체들이 얼마나 헤매고 있을 것인지 우리는 가슴 아파해야 한다.
그리고 마지막으로는 주님 안에서 영으로 하나 된 성도들이 이렇게 어렵고 힘든 상황에서도 서로 섬기며 서로 위로하는 방법을 배워야 한다. 교회 공동체의 모든 성도들이 온라인으로라도 다함께 모일 수 없는 상황에서 소그룹으로 온/오프라인으로 모여 서로의 안전을 배려하면서도 서로를 섬기며 위로하며 주님을 닮아가는 삶을 나누도록 해야 한다. 소그룹 모임이 활성화 되어서, 비록 교회 전체가 모이지는 못하더라도, 교회 안에서 작은 교회를 이루어 서로 섬기며 사랑하며 용기와 소망을 잃지 않도록 보듬어주는 지혜를 배워야 한다.
그러나 이 모든 배움들을 위해 우리가 가장 먼저 해야 할 것은 우리 스스로의 반성과 회개이다. 하나님 아버지 앞에 무릎꿇고 엎드려 우리의 지난 날들에 대한 진정한 반성과 회개가 먼저 이루어지지 않으면 우리는 참다운 배움을 배울 수가 없다. 기껏해야 뭔가 좀 흉내를 내다가 말 뿐이다. 진정한 회개가 있으면 성령님의 조명과 인도하심을 받을 수 있고 무엇을 배워야 할지 성령님께서 가르쳐주실 것이다.
모두들 이 팬데믹 상황이 언제나 끝날까 하며 그날을 학수고대하고 있다. 어떤 이들은 이 땅을 위해 눈물로 기도하며 하나님께서 이 상황을 하루라도 짧게 해주시기만을 간구하고 있다. 이 상황은 언젠가는 분명히 끝난다. 비록 팬데믹 이전의 삶의 방식과 동일한 방식으로 돌아갈 수는 없을지라도 – 뉴노멀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사람들의 생각과 국가들의 가치 기준이 바뀌었기 때문에 그렇다 – 사람들은 다시 얼굴을 마주하며 모여서 서로 함께 하는 방식으로 돌아갈 것이다. 이것은 하나님의 창조의 질서가 공동체 구성원들의 모임을 필수로 하기 때문이다. 아무리 정보화 기술이 발전한다고 하더라도 사람은 서로 얼굴을 대하며 함께 모여야만 하는 존재로 창조되었기 때문에 이 질서는 영원히 유지될 것이다.
따라서 아직 이 팬데믹 상황이 이어지는 동안 우리는 주님 안에서 겸손히 배우면서, 팬데믹 이후의 삶을 준비해야 한다. 하나님께서 지금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것은 우리 삶의 근본적 변화이다. 편안한 현실에 안주하고 복음을 세상과 타협하여 적당히 하루하루를 넘기는 삶이 아니라 하나님의 자녀답게 살기를 요청하시며 또한 그리스도의 대사로서 살기를 요구하시는 것이다. 주변에 이 바이러스에 감염된 사람이 있으면 그들을 돌봐주어야 한다. 혹 바이러스에 희생된 사람이 있으면 그 가족들과 함께 슬퍼해야 한다. 진정한 회개는 이렇게 나타날 것이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은혜를 베푸사 복을 주시고 그의 얼굴 빛을 우리에게 비추사 (셀라)
주의 도를 땅 위에, 주의 구원을 모든 나라에게 알리소서
하나님이여 민족들이 주를 찬송하게 하시며 모든 민족들이 주를 찬송하게 하소서
온 백성은 기쁘고 즐겁게 노래할지니 주는 민족들을 공평히 심판하시며 땅 위의 나라들을 다스리실 것임이니이다 (셀라)
하나님이여 민족들이 주를 찬송하게 하시며 모든 민족으로 주를 찬송하게 하소서
땅이 그의 소산을 내어 주었으니 하나님 곧 우리 하나님이 우리에게 복을 주시리로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복을 주시리니 땅의 모든 끝이 하나님을 경외하리로다
(시편67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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