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이 나와 함께 하심이라
그리스도와 동행하기 또는 하나님의 함께 하심 등으로도 표현할 수 있는 그리스도와의 연합을 우리는 어떻게 인식할 수 있을까? 어떤 사람은 잠들기 전에 “하나님, 안녕히 주무세요”라고 말하고 또 아침에 일어나서 “하나님, 안녕히 주무셨어요?”라고 하며 마치 하나님께서 바로 옆에서 함께 거주하고 계시는 것처럼 대화하는 것을 하나님의 함께 하심으로 표현하기도 한다. 이렇게 생각하며 하나님과 함께 하려고 노력하는 것은 참으로 귀한 생각이다. 그러나 과연 이러한 ‘동거’가 성경이 가르쳐 주는 것일까?
그러면 하나님의 함께 하심 곧 그리스도와의 연합을 우리는 우리의 삶과 인식의 영역에서 어떻게 알 수 있으며 어떻게 적용해야 하는 것일까? 어떤 분처럼 마치 하나님께서 물리적으로 바로 옆에 계시는 것처럼 간주하고 하나님과 대화하며 하나님과 함께 살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 맞는 것일까? 아니면 다른 어떤 것이 있는 것일까?
성경은 가르쳐 주시를, 하나님의 말씀이 곧 하나님이시라고 한다. 하나님의 말씀과 하나님이 결코 분리될 수 없다는 것이다. 심지어 시편에서는 하나님의 말씀이 하나님의 이름보다 더 뛰어나다고 노래하고 있다. 그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에게로 오신 분이 예수 그리스도이시므로 따라서 그리스도와의 연합은 곧 하나님과의 연합이 된다. 그러면 우리는 이러한 그리스도와의 연합을 이론적이나 개념적이 아니라 체험적으로 알 수 있어야 한다. 왜냐하면 성경은 온통 하나님께서 함께 하신 사람들로 가득 차 있기 때문이다.
이것에 대해서 우리 주님께서는 한가지 힌트를 주셨다. 요한복음에 기록된 주님의 말씀에서 주님은 “내가 너희 안에, 너희가 내 안에”라는 표현을 통해 주님과의 연합을 가르쳐 주셨으며 또한 15:7 말씀을 통해 힌트를 주셨다: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들이 너희 안에 거하면 너희가 원하는 바를 구하라. 그러면 그것이 너희에게 이루어지리라.” 이 말씀에서 주님이 우리 안에 거하신다는 것과 주님의 말씀이 우리 안에 거하는 것은 같은 의미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따라서 전체적으로 보면, 이 말씀은 우리가 성령으로 말미암아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거듭 나서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또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 안에서 생명과 삶의 모든 근본이 된다면 모든 것이 하나님 안에서 이루어질 것이라는 말씀이다. 다시 말해서,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처럼 된다면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처럼 산다면 그 삶이 바로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는 삶이며 그리스도와 연합한 삶이고 그리스도와 동행하는 삶인 것이다.
우리가 그리스도를 본받아 그리스도처럼 산다고 말하면서 실제로는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 안에서 아무런 생명력을 갖지 못하고 있다면 그것은 결코 그리스도와 동행하는 삶이 아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내게 생명이 되고 삶이 되며 내 모든 것의 근본이 되지 않으면 나는 결코 하나님과 함께 하는 삶을 살 수 없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하나님의 말씀과 분리되지 않기 때문이며 하나님은 적당히 역사하시는 분이 아니시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나와 함께 하시는데 하나님의 말씀은 나와 함께 하지 않는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그 말씀이 활자화 된 것이 바로 성경이므로, 우선 먼저는 성경이 내게 생명이 되고 삶이 되며 내 모든 것의 근본이 되어야 한다.
이렇게 하나님의 말씀이 내 생명이 되고 근본이 되는 삶은 하루 아침에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그리고 내가 혼자 노력한다고 이룰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성령님의 인도하심과 조명과 역사하심이 없으면 나는 아무리 노력해도 이러한 삶을 살 수가 없다. 여기에서 믿음이 필요하며 기도가 필요하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자녀들을 양육하시므로, 성령님께서 역사해 주실 것을 믿으며 성령님의 도움을 간구하면서 그리고 성령님의 역사하심에 깨어 있으면서 하나님의 말씀을 부지런히 살피고 묵상하면서 노력할 때에 하나님의 말씀은 내게 생명이 되고 삶이 된다. 그러한 삶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며, 따라서 내게도 기쁨이 넘치게 된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나와 함께 하신다는 것을 나는 이제 인식할 수가 있는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이 내게 생명이 되고 내 삶을 지배하여 이끌어가며 내 삶에서 열매 맺는 것을 보면서 하나님의 함께 하심을 인식하는 것이다. 내가 원하는대로 내 생각대로 내 뜻대로 이루어지기를 바라는 삶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이 이루어지기를 바라는 삶이며 하나님의 말씀이 이루어지는 것을 보면서 기뻐하는 삶이 되어야 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말씀이 내 삶을 지배하여 이끌어갈 때에 나타나는 가장 확실한 증거는 무엇인가? 그것은 바로 이웃을 사랑하는 것이다. 가난한 자, 사회적 약자, 병든 자, 슬퍼하는 자, 상심하는 자 등등 어렵고 힘든 사람을 사랑하여 그들에게 실제적인 도움을 주는 것이다. 하나님은 이러한 사람들에게 관심을 갖고 계시기 때문이다. 따라서 먼저는 교회 공동체 안에서 이러한 사람을 섬기고 돕는 것이요, 기회가 된다면 교회 울타리 너머 밖으로 뻗어나가 그러한 사람들을 섬기는 것이다. 직장에서 함께 일하는 동료들 중에 소외되고 상심한 사람은 없는지 살펴보고 그러한 사람에게 친구가 되어 주는 것이 곧 섬기는 것이며, 또한 현대에는 국가나 정부가 교회 밖의 약자를 위해 많은 제도들을 운영하고 있으므로 세금을 정직하게 내는 것이 곧 교회 밖의 약자를 섬기는 가장 쉬운 한가지 방법이기도 하다. 국가는 세금으로 운영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또한 국가나 정부의 손길이 미치지 못하는 곳을 찾아서 직간접적으로 섬기는 것도 귀한 사랑이다.
교회 공동체 안에서 모이기를 떠들썩하게 좋아하는 사람만 모여서 서로 잘 먹고 즐거워 하는 것이나 말 많은 사람을 먼저 챙겨주는 것이 아니라, 부지런히 살펴서 교회에 나오지만 소외되거나 가난하여 모임에 잘 끼지 못하고 불편한 사람을 섬기고 그들과 함께 하는 것이 바로 하나님의 말씀이 역사하는 삶이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가장 우선은 자기 가족을 사랑하는 것이다. 자기 가족 중에 크리스찬이 아닐지라도 사랑하고 아끼며 섬기는 삶이 되어야 한다. 크리스찬과 아닌 사람으로 나누어서 크리스찬은 사랑하고 아닌 사람은 멸시하는 삶은 결코 하나님을 기쁘게 할 수 없다. 그는 잃어버린 영혼이므로 오히려 그를 더욱 사랑해야 하지 않겠는가. 그가 언제 하나님께 돌아올지 누가 알겠는가. 만일 사랑하지 않는다면, 그는 자기 가족조차 크리스찬이 아니라고 해서 사랑하지 않은 사람에게서 하나님의 향기를 느낄 수 있을까. 자기 아내나 형제나 부모를 사랑하지 않는 사람이 다른 사람을 과연 진심으로 사랑할 수 있을까.
여기에서 한가지 조심해야 할 것이 있다. 그것은 사람이 자신을 잘 살펴서, 하나님의 말씀이 자신을 채우고 움직여서 이웃을 사랑하게 하는 것인지 아니면 이웃을 사랑하겠다는 생각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증명하고 싶은 것인지 분별해야 한다. 사람은 너무도 쉽게 자신을 속일 수 있으며 또한 사탄도 사람에 대해 너무도 잘 알고 있으며 속이려고 하기 때문에, 사람이 자신의 신념이나 열심을 바탕으로 해서 살기를, 이웃을 사랑하는 것이 곧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며 하나님의 말씀대로 사는 것이라고 믿고 먼저 그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다. 이러한 삶은 하나님이 그 사람과 함께 하시는 것이 아닐 가능성이 더 크다. 이러한 이웃 사랑에는 인내와 절제가 없고 눈에 보이는 것을 추구하게 되며, 하나님 안에서 모두가 누리는 기쁨이 없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사람은 반드시 변한다. 하나님의 말씀이 그에게 생명이 되고 삶이 되어 그를 변화시키기 때문이다. 내 생각대로 내가 원하는대로 변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이 열매 맺는 삶으로 변하게 된다. 이를 통해 하나님의 함께 하심을 알고 기뻐하며 누릴 수 있는 것이다. 바로 이러한 하나님의 함께 하심 곧 그리스도와의 연합은 내 삶을 너머 내 가족과 형제와 교회를, 그리고 교회 밖으로 넘쳐서 그리스도를 증거하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이제 힘을 내서 하나님과 함께 하는 삶을 살아보자. 하나님께서 마침내 이루시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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