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집의 그릇들
하나님의 집의 그릇들
큰 집에는 금 그릇과 은 그릇뿐 아니라 나무 그릇과 질 그릇도 있어 귀하게 쓰는 것도 있고 천하게 쓰는 것도 있나니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런 것에서 자기를 깨끗하게 하면 귀히 쓰는 그릇이 되어 거룩하고 주인의 쓰심에 합당하며 모든 선한 일에 준비함이 되리라 (딤후 2:20~21)
어느덧 이 블로그를 시작한지 거의 1년이 다 되어 가고 여기에 올린 글도 100 개를 넘게 되었다. 그동안 열심을 냈던 적도 있고 좀 해이해졌던 적도 있어서 오르락내리락 하며 여기까지 왔다. 사실 100 개가 넘었다고 해서 뭔가 특별한 의미가 있는 것은 아니다. 다만 어쨌든 하나님의 은혜와 도우심으로 인해서 100 개의 글을 올렸다는 것을 기쁘게 생각할 뿐이다. 지금까지의 블로그 활동에 대해 전반적인 정리와 함께 반성도 하고 앞으로의 방향도 좀 생각해 보았다.
요근래 들어서는 블로그 방문이 거의 다 검색을 통해서 이루어진 것들이었다. 꾸준히 블로그를 방문해 주시는 분들도 계시겠지만 검색을 통해서 이 블로그를 알게 되고 특정 글들만 읽는 형태로 방문하는 방문객이 대부분이다. 애초에 본 블로그를 시작할 때의 마음은 코로나 팬데믹으로 모두가 어려운 상황에서 어느 누군가 단 한 명에게라도 위로가 되고 도움이 되며 하나님을 섬기는 삶을 함께 나눌 수만 있다면 좋겠다는 심정이었다. 그리고 이 목표는 바뀐 것 같지 않고 여전히 동일한 마음으로 글을 올린다. 가끔 댓글을 남겨주시는 분도 계셔서 그나마 글을 올리는 데 힘이 되곤 한다. 좀 더 많은 대화나 토론 및 소통이 있었으면 하는 바램이 있지만 아직은 미미한 수준이다. 그리고 이렇게 작은 일이지만 작은 일일지라도 어떻게 하면 올바르게 제대로 해서 하나님을 기쁘게 해드릴까 하는 고민을 하는데, 디모데후서의 말씀이 큰 도움이 되었다.
이 말씀에서 “큰 집에는 금 그릇과 은 그릇뿐 아니라 나무 그릇과 질 그릇도 있어 귀하게 쓰는 것도 있고 천하게 쓰는 것도 있다”고 한 개역개정본은 조금 오해할 여지를 주고 있다. 마치 금 그릇과 은 그릇은 귀하게 쓰는 그릇이고 나무 그릇과 질 그릇은 천하게 쓰는 그릇인 것처럼 느껴지게 하고, 그래서 귀하게 쓰일려면 그릇 자체가 좋아야 하는가 하는 생각을 갖게 한다. 그러나 바로 그 다음 말씀을 보면 그런 구분은 잘못 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큰 집에는 다양한 그릇들이 있지만 어느 그릇이든 깨끗한 그릇이 되어야 귀하게 쓰인다는 것을 표현한 말씀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먼저 사도 바울은 무엇을 의미하기 위해서 “자기를 깨끗하게 한다”는 말을 사용했는지 살펴보아야 한다. 아마도 많은 사람들이 흔히 이 말을 금욕이나 명상과 연결시키서 이해하려고 할 것이다. 그래서 스스로 참고 억눌러서 자기의 욕심을 비워내고 잡념을 비워내서 아무런 헛된 생각을 갖지 않고 있는 상태라고 생각할 것이다. 그런데 성경은 그런 개념을 가르치지 않는다. 헛된 욕심을 버리는 것 자체를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헛된 욕심을 어떻게 버릴 것인가에 대한 개념이 사람들의 일반적인 생각과는 다르다는 것이다. 단적으로 말하면, 깨끗하게 하는 것은 비우는 것이 아니라 채우는 것이다. 채움으로써 깨끗해지는 것이다. 성결 그 자체이신 예수 그리스도로 나를 채우는 것이 바로 깨끗해지는 유일하고도 완전히 확실한 방법이다. 그 이외의 방법은 없다. 컵 안의 공기를 모두 없애기 위해 컵을 완전한 진공으로 만드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그러나 그 컵에 물을 채우면 공기는 모두 빠져나간다.
출애굽기에는 성막을 만들기 위해서 쓰임 받은 브살렐에 대한 기록이 있다. 하나님은 자신의 영을 그에게 충만하게 하셔서 지혜와 총명과 지식으로 여러 가지 일을 하게 하셨다(출 35:31)고 기록되어 있다. 또한 사도행전에는 이런 기록이 있다. “형제들아 너희 가운데서 성령과 지혜가 충만하여 칭찬 받는 사람 일곱을 택하라 우리가 이 일을 그들에게 맡기고”(행 6:3)라는 말씀처럼 쓰임 받기 위해서는 그리스도의 영으로 채워져야 한다. 또한 에베소서의 말씀 “술 취하지 말라 이는 방탕한 것이니 오직 성령으로 충만함을 받으라”고 하셨으니 방탕하여 더러운 것에 대한 반대의 개념으로서 성령 충만이 제시되고 있다는 것을 볼 때에 “자기를 깨끗하게 한다”는 말씀은 성령님으로 충만하여 깨끗하게 되는 것을 의미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것은 또한 ‘더럽다’에 대한 반대말로서 성경은 ‘거룩하다’는 단어를 주로 사용한다는 것에서도 알 수 있다. 요한계시록을 보면 “불의를 행하는 자는 그대로 불의를 행하고 더러운 자는 그대로 더럽고 의로운 자는 그대로 의를 행하고 거룩한 자는 그대로 거룩하게 하라”(계 22:11)는 말씀에서 확인할 수 있다. 다시 말해서 ‘깨끗하다’는 말은 ‘거룩하다’는 말과 같다는 것이다. 그리고 우리가 거룩한 삶을 살기 위해서는 오직 한 가지 방법 밖에는 없다. 바로 성령 충만으로 옛 본성을 쳐서 이겨야 한다. 사람이 깨끗해지기 위해서 악한 생각을 억누르며 없애려고 스스로의 힘으로 노력하는 것으로는 절대로 깨끗해질 수가 없다. 사람의 본성이 자기 중심적이고 욕망을 유전자에 가지고 있는데 어떻게 스스로 깨끗해질 수가 있겠는가. 유일한 방법은 본성 자체가 바뀌는 것 밖에는 없다. 그래서 사람이 깨끗해지려면 먼저 거듭나야 한다. 그리고 이제 그의 새로운 본성이 올바르게 활동하려면 성령 충만해야만 하는 것이다.
성령 충만이란 에베소서 5:18~21 말씀에 기록된 것처럼 말씀 충만이요 찬송 충만이고 감사 충만이며 겸손 충만이고 사랑 충만이다. 그래서 26절에 기록된 것과 같이, “이는 곧 물로 씻어 말씀으로 깨끗하게 하사 거룩하게 하시고”가 되는 것이다. 다만 성령 충만은 그냥 저절로 되는 것이 아니다. 나 자신이 힘써서 성령 충만을 받으려고 노력해야 받게 되는 것이다. 술 좋아하는 사람이 술 취하지 않고 방탕하지 않으려면 노력해야 되는 것과 마찬가지로 거듭난 사람이 성령 충만을 받으려면 노력해야 하며, 그것도 대충 노력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모든 것을 제쳐 두고 오직 성령 충만을 바라며 노력해야 하는 것이다. 그래서 말씀으로 충만하기 위해 매일 말씀을 묵상하는 노력을 기울여야 하고, 찬송과 감사로 충만하기 위해 늘 기도에 힘쓰며, 겸손과 사랑으로 충만하기 위해 항상 자신을 낮추며 다른 사람들을 자신보다 더 낫게 여기고 그들의 필요를 돌아보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하나님은 나를 사랑하시는 만큼 다른 사람도 사랑하시기 때문이다. 결국 성령 충만이란 그리스도의 영이 나를 온전히 주관하시는 상태를 의미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사도 바울의 가르침에 대해서 결론을 내릴 수 있다. 하나님이 은혜를 베풀어 주시고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구속하셔서 일꾼 삼으신 사람은 어느 누구라도 출신 성분이나 자신의 능력이나 그 무엇보다도 성령으로 충만함을 받음으로써 귀하게 쓰일 수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성도가 이렇게 성령 충만한 상태가 되어야 언제 어디서 어떠한 방법으로 어느 사역에든 쓰시는 것은 하나님이시니 하나님의 계획과 목적에 따라 쓰임을 받으며, 그가 하는 모든 일이 마치 성령님이 하시는 것과 같은 향기가 나고 열매를 맺을 수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성령 충만, 곧 깨끗하고 거룩하게 되는 것이 하나님의 사역에 쓰임을 받는 시작점이므로, 누구라도 하나님의 사역을 담당하고자 하는 사람이 있다면 먼저 성령님으로 충만하기를 힘써야 한다. 이것이 거듭난 성도가 사역함에 있어서 가장 기본이 되는 것이다.
이 블로그 사역을 돌이켜 보건대, 내가 올린 글들이 과연 성령님의 향기가 나는지 그리고 하나님이 기뻐 받으실 만한 글들인지 항상 고민해 왔다. 애초의 목적처럼 어느 누구 단 한 사람이라도 여기에 올려진 글을 통해서 위로를 받고 새 힘을 얻으며 하나님과 조금 더 친밀해지고 조금 더 동행하는 열매를 얻기를 늘 소망해 왔다. 그리고 또한 이 사역을 통해 나 역시 영적인 성장을 이루기를 소망해 왔다. 그래서 항상 하나님 아버지의 은혜 가운데 우리 주님만을 의지하여 성령님으로 말미암아 말씀과 감사와 찬송과 사랑이 충만해지기를 간절히 바라고 또 바라며, 나뿐만 아니라 이 글을 읽는 모든 독자들에게도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와 능력이 임하기를 기도하며……
이제 다시 새 힘을 내서 성령 충만 가운데 다음 글을 준비해야겠다.